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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Apr 30. 2021

비가 온다고요? 그럼 이걸 먹어야겠군요

수제비와 김치전

비가 오는 주말이면 엄마는 으레 분홍색 플라스틱 믹싱볼에 밀가루를 탈탈 붓는다. 물을 조금씩 넣고 20분 정도 치대면 가루는 어느새 수제비 반죽이 된다. 그러면 반죽을 냉장고에 넣고 다시 밀가루를 붓고 물을 넣는다. 그러고는 김치를 숭덩숭덩 잘라 부침개 반죽을 만든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부침개 반죽을 넣으면 어느새 부침개 한 장이 뚝딱 완성된다. 적당히 익은 김치를 밀가루 반죽과 섞어 기름에 튀기듯 구웠으니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나는 제일 먼저 젓가락을 들이밀어 바삭바삭한 가생이부터 뜯어먹는다. 가운데는 별 흥미가 없다. 가장자리를 다 먹고 나면 젓가락은 대기 중이다. 새로운 부침개를 기다려야 한다. 가장자리만 좋아하는 딸을 위해 엄마는 때때로 도넛 모양으로 가운데가 빈 김치전을 만들었다. 가장자리가 더 많이 생겨 남기는 것 없이 맛있게 다 먹을 수 있도록. 


엄마는 그렇게 김치전 대여섯장을 연거푸 굽고 나서 수제비 반죽을 꺼내 수제비를 끓인다. 어릴수록 수제비를 뜯는 건 재미있다. 엄마는 조물조물 얇고 넓게 잘만 뜯는데 내가 하는 건 늘 두툼하다. 보나마나 안 익을 테지만 엄마는 내가 만들고 싶은 모양의 수제비를 만들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곤 먼저 익은 수제비를 건져낸 뒤 내가 만든 건 2~3분 정도 더 익힌 뒤 꺼냈다. 말하지 않아도 엄마가 만든 수제비가 부들부들하니 훨씬 더 맛있다. 


수제비는 엄마 맛에 길들여졌는지 엄마가 해준 게 가장 맛있다. 멸치육수 베이스에 채소들은 아낌없이 들어가 있다. 나풀거리는 수제비를 부드러운 감자, 애호박과 같이 후루룩 넘기면 이미 김치전을 먹어 배가 부른데도 음식들이 빈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가끔씩 수제비가 생각나 밖에서 먹거나 배달시켜 먹어보기도 했는데 수제비가 두툼하고 고추장만 푼 듯한 국물 맛이 자극적인데도 밍밍하다. 채소도 별로 없어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내가 수제비를 만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마트에서 파는 수제비 반죽은 밀가루 냄새만 풀풀 나서 두 번 다시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김치전은 곧잘 해먹는다. 엄마는 김치전에 김치만 넣고 만들었는데 나는 냉장고 상황을 보고 베이컨이나 옥수수콘 같은 것을 같이 넣어 만든다. 피자치즈를 넣고 뚜껑을 닫으면 김치피자전이 된다. 일종의 퓨전이랄까.


도넛 모양 김치전도 시도해봤는데 뒤집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늘 실패다. 적지 않은 내공이 필요한 작업 같다. 몇 번 해보고는 ‘넘사벽 기술’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채고 손바닥만 하게 만드는 쪽으로 작전을 바꿨다. 크게 한 장 만드는 것보다야 손이 더 가지만 맛있게 먹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보다 내가 만든 게 맛있다고 생각하는 건 몇 개 없는 데 그중 하나가 김치전이다. 김치 외에 이것저것 씹히는 게 재밌고 달달매콤한 게 내 입맛에 딱이다. 역시 건강식보다는 불량식품이 더 맛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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