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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블 May 07. 2021

음식 못 하는 아줌마가 만드는 맛있는 음식

계란말이

엄마는 스스로를 ‘음식 못 하는 주부’라고 박하게 평가한다. 나야 태어났을 때부터 스무살이 될 때까지 맛있을 수 없는 급식과 약간의 외식을 제외하면 엄마가 해준 음식만 먹어왔으니 엄마의 요리를 평가할 게 못된다. 음식이란 게 원래 이 맛이고, 이렇게 생긴 게 집밥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다 대학생이 되고 회사에 다니게 되면서 ‘맛의 신세계’에 눈을 떴다. 세상에 왜 이렇게 신기하고 맛있는 음식이 지천에 깔려있는지. 생전 처음 먹어본 것도 많았고, 먹어본 것 중에서도 특별히 더 맛있었던 것도 많았다.


그래도 계란말이만큼은 엄마가 해준 게 가장 맛있다. 급식으로, 외식으로 김치 다음으로 많이 먹었을 음식이지만 엄마의 클래식한 계란말이를 따라올 수 있는 게 없다.


신기하게도 엄마가 만드는 계란말이는 특별할 게 없다. 누구든 상상하는 그 모양의 그 맛이다. 가장 전통적인, 어쩌면 촌스러운 그 맛.


음식의 색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엄마는 계란말이라고 봐줄 리 없다. 쪽파와 당근, 햄 같이 냉장고에서 굴러다니는 재료를 아무거나 꺼내 다진 뒤 계란물과 섞는다. 그러면 그것들은 알아서 계란말이에 예쁜 옷을 입혀준다.


엄마는 본인을 ‘불량주부’라고 했지만 둥그런 프라이팬에 들이부은 계란물을 특별한 도움 없이 척척 마는 실력은 연륜이나 실력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엄마도 결혼하고 나서야 음식을 처음 해봤다고 했으니까.


나도 결혼하고 그제야 음식을 하기 시작했는데 엄마의 계란말이가 생각나서 딱 두 번 도전한 적이 있다. 엄마 어깨너머로 봐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도전했지만 계란말이가 됐어야 할 그것들은 5분 뒤 스크램블로 완성됐다.


요즘 계란말이는 네모난 전용 프라이팬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를 또 어디서 주워듣고 프라이팬도 구비했다. 그러나 장인은 장비 탓을 하지 않는다는 교훈만 얻고 또 스크램블을 먹었다. 한 번 사용한 프라이팬은 절반 가격에 중고거래로 처분했다.


엄마에게 계란말이 비법을 물어봤지만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는 모른다고만 한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지 프라이팬을 들기는커녕 계란을 깨는 것도 힘들어한다.


괜히 울적한 마음에 이자카야에서 평소에는 절대 시키지 않을 메뉴를 시켰다. 누가 엄마 계란말이가 제일 맛있대? 무려 1만5000원을 주고 먹은 계란말이는 포슬포슬, 보들보들한 게 카스텔라처럼 촉촉했다. 칼질한 계란말이 한 점 한 점마다 명란이 예쁘게 올려져 있다.


그런데 기분은 더 울적하다. 우리 엄마 계란말이는 포슬포슬, 보들보들하지 않아도 식감이 더 좋았던 것 같은데. 세련되지 않은 우리 엄마 계란말이는 케첩에 푹 찍어 새콤하면서 짭쪼롬한 맛으로 먹었는데.


이런 얘기를 하다보면 더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더 이상 엄마 계란말이를 먹지도, 흉내 내지도 못한다는 생각만 하면 바다 깊은 곳으로 침몰하는 기분이 든다. 이젠 정말 이러면 안 되는데. 지금 있는 이 행복을 지키려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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