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소련이 붕괴한 후 미국은 명실상부 세계 초강대국 위치에 올랐다. 그 누구도 미국에 도전할 생각을 못했고 오히려 눈치 보기에 급급했다. 물론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미국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의 목소리였을 뿐 국가가 공식적으로 미국에 대항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벌어진 2001년 9·11 테러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날 이슬람 무장단체 알카에다는 여객기를 납치한 후 그 여객기로 세계무역센터를 들이 받는 그야말로 정신 나간 짓을 저질렀다. 공식적인 사망자만 3000명에 달했고, 부상자나 2차 피해자의 수는 제대로 집계하지도 못했다. 분노한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거부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어 2003년에는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아 지금도 적지 않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를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이를 전쟁으로 대응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특히 이라크 전쟁의 궁극적인 목표는 중동 장악과 석유 확보라는 뒷말도 나돌았다. 대중음악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닐 영, 패티 스미스, 마돈나 등 원로 음악가들뿐 아니라 젊은 음악가들도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 비판에 앞장섰던 젊은 음악가가 바로 빌리 조 암스트롱이 이끄는 펑크 밴드 그린데이였다.
그린데이의 역사는 1987년 미국 오클랜드에 거주하던 암스트롱과 그의 친구 마이크 던트가 스위트칠드런이라는 밴드를 결성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몇 명의 멤버 교체를 겪으며 암스트롱(기타), 던트(베이스), 존 키프마이어(드럼), 3인조 밴드로 거듭났고 1990년 첫 앨범 《39/Smooth》를 발매했다. 무명 밴드의 앨범이었기에 빌보드 차트는커녕 앨범을 발매했다는 사실에 의의를 둬야했지만 훗날 그린데이가 유명해지고 나서는 《39/Smooth》도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게 된다.
이후 키프마이어가 탈퇴하고 트레 쿨이 드러머로 합류했다. 새로운 멤버를 맞은 그린데이는 1991년 2집 《Kerplunk》를 발매했고, 유럽으로 공연을 떠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때까지도 그저 그런 펑크 밴드 중 하나였을 뿐 대중적으로 알려진 음악가는 아니었다.
무명 밴드 그린데이가 변화를 맞은 것은 1994년 3집 앨범 《Dookie》를 발매하면서부터다. 《Dookie》는 빌보드 차트 2위를 기록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렸고, 그린데이도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1980년대 초반 이후 명맥이 끊겼던 펑크 음악의 부활이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1970년대 펑크 음악가들보다 더 큰 인기를 누렸다.
《Dookie》의 주제는 마약, 좌절, 연애 등이었다. 이른바 펑크 정신이라 불리는 저항정신은 그닥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린데이의 인기는 엄청났고, 뒤이은 앨범 《Insomniac》도 빌보드 차트 2위를 기록했다. 후속 앨범 《Nimrod》은 빌보드 차트 10위, 《Warning》은 4위의 성적을 거두며 나름대로 인기를 유지했다.
그린데이는 2000년 발매 앨범 《Warning》에서 조금씩 사회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000년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해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와 민주당의 알 고어가 경쟁했다. 당시 그린데이는 고어를 지지했고, 이를 음악에 반영했다. 암스트롱은 2020년 1월 『Rolling Stone』과의 인터뷰에서 《Warning》 수록곡 <Minority>에 대해 “나는 부시와 고어의 대선 직전에 이 곡을 썼다”며 “당시 정치가 보수쪽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Minority>는 지금도 그린데이의 대표곡이자 그들의 정치성향을 잘 나타내주는 곡으로 꼽힌다.
‘나는 소수자가 되고 싶어. 나는 네 권위 따위 필요 없어. 도덕적 다수파도 반대야. 왜냐면 나는 소수자가 되고 싶으니까. 나는 지하세계에 충성할 것을 맹세해. 개 아래 있는 국가에 나 홀로 서있어. 군중 속 얼굴은 틀에 박혀있어서 알려지지도 않아. 의심할 여지없이 내가 아는 유일한 방법은 한명을 선발하는 거야.’ - <Minority>
2000년 미국 대선은 치열한 경쟁 끝에 조지 W. 부시가 승리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암스트롱은 부시 대통령의 정책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인물 중 하나다. 그는 부시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노래 가사로만 이야기하지 않고, 언론 인터뷰와 인터넷 등 여러 채널을 통해 드러냈다. 2002년 11월, 암스트롱은 그린데이 홈페이지에 육성 메시지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저는 부시 대통령에게 전쟁을 재고해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보낼 생각입니다. 이 진정서는 미국에 사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강행했다. 이에 그린데이 멤버들은 부시 대통령, 나아가 미국의 전쟁을 비판하기 위한 앨범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탄생한 앨범이 2004년 9월 발매된 《American Idiot》으로 앨범 제목부터 미국을 원색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린데이는 《American Idiot》 수록곡 <American Idiot>에서 미국 정부가 언론을 통해 국민을 선동한다고 주장했고, <Holiday>에서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참상을 다뤘다. 훗날 암스트롱은 <Holiday>가 부시 대통령에게 날리는 욕이라고 털어놨다.
‘가스맨 대통령에게 경례. 폭탄이 날아 다니는 건 너에 대한 처벌이야. 네 정부를 비판하는 에펠탑을 부숴버려. 부서진 유리가 쾅쾅거려. 동의하지 않는 놈들은 다 죽여. 불을 피우고 불로 심판하는 건 내가 의도했던 게 아니야. 그냥 단지 우리는 무법자니까.’ - <Holiday>
《American Idiot》의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부르기 쉬운 흥겨운 리듬의 곡들로 구성됐다. 덕분에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어 학교 밴드 동아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American Idiot》 수록곡을 연주했다. 미국 현지에서도 인기를 얻어 빌보드 차트 1위는 물론이고, 그래미상 최고의 록 앨범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앨범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American Idiot》은 마빈 게이의 《What's Going On》처럼 앨범 수록곡이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는 컨셉 앨범이다. 주인공인 ‘교외의 예수’가 끝없는 여정을 펼치며 방황하다가 결국 집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앨범의 구성과 음악성은 물론이고, 뮤직비디오까지 버릴 게 하나 없는 완벽한 앨범이었다.
그런데 앨범 타이틀 곡 <American Idiot>이 가수 조영남의 <도시여 안녕>을 표절했다는 논란이 있다. 일각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치부하지만 코드나 멜로디 진행이 상당히 유사한 게 사실이다. 당시까지 그린데이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은 없었지만 우연히 <도시여 안녕>을 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않다. 공교롭게도 두 곡 모두 가사에 텔레비전이 등장한다. 일단 그린데이가 이와 관련한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아 의도적으로 표절을 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조영남은 2014년 7월 방송 『불후의 명곡』에 출연해 “친구들이 (그린데이를) 고소하라고 했지만 나도 시작은 번안곡 딜라일라를 가져다 썼기에 그냥 넘어갔다”고 말했다.
여하튼 그린데이는 《American Idiot》 발매 후 《Rock Against Bush Vol.2》 앨범 작업에도 참여했다. 《Rock Against Bush Vol.2》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부시 대통령을 비판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앨범이다. 이미 2004년 4월 《Rock Against Bush Vol.1》이 발매됐고, 《Rock Against Bush Vol.2》는 그 후속판이었다. 《Rock Against Bush Vol.2》 앨범은 성격이 성격이다보니 일부 음악팬들에게 화제만 됐을 뿐 높은 판매량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막바지를 향해갔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의 존 매케인이 후보로 나섰다. 이때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피로감,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등으로 오바마의 우세가 점쳐졌다. 전쟁에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온 암스트롱도 당연히 오바마를 지지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대통령 당선자는 오바마였다. 암스트롱은 2008년 7월 『Rolling Stone』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나는 인정해야만 했다. 내 목구멍에 있는 응어리가 나오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한편 그린데이는 《American Idiot》에 이은 또 다른 걸작 《21st Century Breakdown》을 2009년 발매했다. 《American Idiot》에서 보여준 컨셉 앨범의 특징을 이어갔고, 사회 비판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닉슨 대통령 시절부터 이어진 사회문제가 21세기가 되도록 해결이 안 됐다는 것이 《21st Century Breakdown》의 핵심주장이다. 암스트롱은 이 앨범에 대해 “우리 주변에는 악의적 조작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고, 그걸 이해하려고도 한다. 그게 정부, 종교, 미디어 또는 어떤 형태의 권한에 의한 것이건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묘사다”라고 설명했다.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지쳐간 미국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그린데이에 열광했다. 《21st Century Breakdown》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그래미상 최고의 록 앨범상까지 수상했다. 앨범 발매 후 그린데이는 홍보를 겸해 월드투어를 진행했고, 2010년 1월 첫 내한공연까지 이뤄졌다. 암스트롱은 “한국 관객들은 지금까지 본 가장 미친 관객들이다”라고 화답했다.
이 시기 암스트롱은 뮤지컬 배우로도 출연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혔다. 2009년 앨범 《American Idiot》을 바탕으로 한 뮤지컬 『American Idiot』이 만들어졌고, 암스트롱도 이 뮤지컬에 출연했다. 뮤지컬 『American Idiot』은 브로드웨이에서만 400회 이상 공연했고, 2013년에는 방한 공연까지 하는 등 나름 인기를 끌었다.
2012년에는 3부작 앨범 《¡Uno!》 《¡Dos!》 《¡Tré!》를 발매했다. 스페인어로 1, 2, 3을 뜻하는 이 앨범들은 새로운 음악적 시도였고, 가사의 주요 내용은 자기 성찰적 메시지였다. 꽤나 신선한 시도로 주목받았지만 《¡Dos!》는 빌보드 차트 9위, 《¡Tré!》는 13위에 머물렀고, 그나마 《¡Uno!》가 2위에 오르며 간신히 체면치레는 했다. 《American Idiot》과 《21st Century Breakdown》의 폭발적인 인기와 비교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이 시기 암스트롱은 나름의 힘든 시기를 보냈다. 2012년 9월, 그린데이는 『iHeartRadio』 공연에서 거친 욕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이날 공연 주최 측은 다른 음악가들에게 더 많은 시간을 배정하기 위해 그린데이의 공연 시간을 45분에서 20분으로 줄였다. 그린데이 입장에서는 억울한 일일 수 있지만 무대에서 기타를 부수고 욕을 하는 장면이 그대로 TV 전파를 타면서 비판은 피할 수 없었다.
이 사건 이후 암스트롱은 술을 찾는 날이 늘었고, 이에 따라 건강도 급속도로 나빠졌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불면증 약을 복용하는가 하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안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다행히 다른 그린데이 멤버들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했고, 2013년부터는 다시 공연장에 모습들 드러냈다.
암스트롱은 2012년 미국 대선에서도 오바마를 지지했지만 과거에 비하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이라크 전쟁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같은 큰 이슈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암스트롱 본인이 각종 논란에 휩싸이면서 정치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2014년 초에는 던트의 아내 브리트니 프릿처드가 유방암 판정을 받으면서 그린데이의 활동도 예전만 못했다.
이후 2015년 4월, 그린데이는 다시금 언론의 주목을 다시금 받게 된다. 바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그린데이가 헌액된 것이다.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첫 앨범 발매 후 25년이 지나야만 한다. 그린데이의 첫 앨범 《39/Smooth》가 1990년 발매됐으니 자격 요건을 채우자마자 헌액된 셈이다. 음악가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린 그린데이는 점차 골치 아픈 사회운동 대신 팬들과의 소통을 즐기는 삶을 보냈다. 2015년 크리스마스 때는 유튜브를 통해 곡 <Xmas Time of the Year>를 공개하는 팬서비스까지 보여줬다.
암스트롱도 40대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조용한 중년을 보낼 생각이 없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시작하자 암스트롱은 2000년대 중반 못지않게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당초 암스트롱은 민주당 예비후보 버니 샌더스 지지자였지만 민주당 경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후보로 선출되자 암스트롱도 클린턴을 지지했다. 사실 암스트롱은 클린턴을 썩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클린턴을 지지한 이유는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크나큰 반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선은 결국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다. 대선 3일 후인 2016년 11월 11일, 암스트롱은 『The Guardian』이 주최한 독자들과의 대화에서 “나는 처음에 샌더스에게 투표했다. 클린턴은 미국의 대통령감이 아니라는 것을 본인도 인정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트럼프. 그리고 파시즘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이메일은 한물갔다. 나는 지난 사흘 동안 파시즘 대통령을 봤다. 아직 파시즘이 어떻게 다뤄질지는 모르겠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암스트롱은 대선 이전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인 우월주의자이자 파시스트라고 주장하며 ‘위험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심지어 어떤 인터뷰에서는 트럼프를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했다. 보수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암스트롱이 비판을 의식해 할 말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2016년 말은 그린데이가 음악적으로도 다시 광풍을 일으킨 때다. 그해 10월 발매된 앨범 《Revolution Radio》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한국 가온 국외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연하게도 그린데이는 2016년 11월 20일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 초대받아 공연을 하게 됐다. 암스트롱은 이날 공연에서 곡 <Bang Bang>을 부르는 도중 별안간 “트럼프 반대. KKK 반대. 파시스트 미국 반대”를 수차례 외쳤다. 축제의 장에서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반대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통쾌한 공연이었다.
암스트롱은 과거 부시 대통령을 비판한 것 이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2017년 11월 발매된 그린데이 베스트 앨범 《Greatest Hits: God's Favorite Band》에는 신곡 <Back in the USA>도 수록됐다. 말할 것도 없이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곡이다. 마치 <American Idiot>으로 돌아간 듯한 가사와 암스트롱의 저항정신 그리고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었다. 무작정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시적인 비유까지 곁들여 과거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내가 들은 가장 슬픈 이야기는 끝없는 전쟁 속 군인처럼 우리의 평범한 집이 안전하게 느껴진다는 거야. 그리고 모든 교회가 술 가게를 가진다는 거야. 행진 위에 모든 미친 것들과 함께 자유의 종을 울리자. 레몬에이드 맛의 독을 먹이자.’ - <Back in the USA>
암스트롱은 말로만 떠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2016년 말 암스트롱은 경찰이 스탠딩록 시위를 무력 진압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항의했다. 스탠딩록 시위의 내용은 미국이 추진 중인 다코타 파이프라인 사업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환경문제, 문화제 파괴 등이 염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파이프라인 사업은 강행됐지만 오랜 법적 공방 끝에 2020년 7월 미국 워싱턴DC 연방법원은 파이프라인 운영을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암스트롱의 항의가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이쯤 되니 미국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언론은 암스트롱에 주목했다. 2020년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예상하듯 암스트롱은 민주당의 샌더스를 지지했고, 민주당 경선 이후에는 최종 후보인 조 바이든을 지지했다. 이렇듯 암스트롱은 어느 샌가 정치사회적으로 크게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이처럼 사회적으로나 무대 위에서나 암스트롱은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지만 무대 밖에서의 행동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 적지 않은 음악가들이 부적절한 사생활로 비판 받았지만 암스트롱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된 적도 없다. 오히려 아내 에이드리언 네서와 결혼한 후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불린다. 암스트롱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하기 위해 다소 과격한 방법도 사용했지만 팬들과 약자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이었다. 나설 때를 구분할 줄 알고, 나설 때는 누구보다 앞장서는 모습이 그린데이를 이끄는 힘이자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