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잘하고 있는 우리가 있다.
“이것까지만 해내자, 이것까지만 하자” 하고 달리다 보니 어느새 끝끝내 캐나다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매번 그 목표를 이루어도 마음은 잠깐뿐이었다. 행복은 늘 ‘다음 목표’ 뒤에 숨어 있었고, 나는 또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이제 좀 쉬자’라는 말보다 ‘이제 이거까지만’이 내 입버릇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살아오며 나는 늘 무언가를 증명하려 했던 것 같다. 누구에게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왜 그렇게 조급했는지도 모르면서. 결국 내가 쫓았던 건 행복이 아니라 불안의 반대편이었다.
한국에서 나는 늘 ‘기준’ 속에서 살아야 했다. 표준 몸무게에 맞춰야 했고, 더 높은 연봉을 위해 애썼으며, 이 나이에 얼마쯤은 있어야 한다는 사회의 눈금에 나를 끼워 맞췄다. 일을 마치고 나서도 운동을 하고, 책을 읽으며
내 또래의 ‘평균’보다 한 걸음이라도 위로 올라가려 참 많이도 애썼다.
캐나다에 와서도 처음엔 똑같았다. 영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고,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날 괴롭혔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증명하려던 건 사실, 아무도 나에게 요구하지 않았던 것들이었다는 걸.
더 높은 연봉, 남들보다 앞서 나가는 성취,
타인의 시선에서 인정받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이 충분히 노력했고, 오늘 하루를 의미 있게 살았다고 느끼는 것. 그리고 가족과 함께 작은 행복을 누리며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삶.
얼마 전 내가 담당했었던 환자가 돌아가셨다. 나와 나이는 같았지만, 삶의 상황은 달랐다. 그 환자에게는 가정이 있었고, 예쁜 딸도 있었다.
그 환자를 떠올리면, 문득 내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하루일지라도, 가족과 함께 보내고, 작은 행복을 누리며, 내 마음대로 선택한 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교하지 말자. 나는 내 길을 걷자. 오늘 내가 최선을 다했고,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행복하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이 말은 20대 초반, 버티고 좌절하며 비교와 우울 속에 있던 나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