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지만 그래도 버텼다

넘어지면서도 앞으로 가는 법을 배웠다.

by 헬로벨라


간호학생 시절을 지나, 간호사로 첫 출근하던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토록 꿈꿨던 NICU(신생아중환자실)에 배정되었을 때, 마음은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벅찬 기대와는 다르게, 나는 결국 약 9개월 만에 그곳을 떠나게 되었다.


신규였던 나에게는 작은 실수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조금만 틀려도 호통이 돌아왔고, 나는 늘 혼났고, 늘 두려웠고, 종종 억울하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담당하던 아기가 다음 날 다른 병원으로 전원 가게 되었다. 부족한 실력이었지만, 선생님들께 묻고 또 묻으며 어떻게든 완벽하게 준비해 보려 애썼다.

하지만 나에게 인계를 받던 선생님은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오히려 나를 혼낼 구실만 찾았다.


심지어 “우리 병원에서 저 병원까지 몇 분이 걸리는지 아냐”라고 묻고, 모른다고 하자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인계를 주냐”며 또다시 나를 몰아세웠다.


그 몇 분이 왜 그렇게 중요한 걸까. 그 질문 하나로 나에게 화를 내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마침 그때 차지 선생님이 다가오셨고, 왜 그러냐고 내게 물으셨다. 나는 상황을 그대로 설명했고, 차지는 그 2년 차 선생님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너나 잘해. 이상한 거 묻지 말고, 쓸데없는 걸로 사람 괴롭히지 마.”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2년 차 선생님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미움을 받기 시작했다. 아무리 조심해도, 어떤 작은 일에도 내 잘못으로 몰리곤 했다.


아무튼 그렇게, 나의 첫 사회생활은 슬펐다. 매일 울었고, 솔직히 말하면… 그만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결국, 살고 싶어서 퇴사를 선택했다.


집으로 돌아온 날, 부모님께 큰 실망을 안긴 것 같아 방으로 곧장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아빠가 문을 ‘똑똑’ 두드리며 들어오셨다.


“왜 아는 척도 안 해? … 고생했어.”


그 말과 함께 나를 꼭 안아주셨다.


나중에 엄마가 조심스레 들려준 이야기지만, 내가 매일 울며 그만두겠다고 할 때 부모님은 “조금만 더 버텨보자”라며 나를 붙잡으셨다. 하지만 내가 완전히 한계에 다다르자, 부모님 마음에는 ‘혹시 얘가 혼자 멀리…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함이 스쳤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내가 얼마나 벼랑 끝에 서 있었는지 그제야 실감이 났다.


그렇게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던 어느 날, 유퀴즈에서 우연히 서울 거리 풍경이 나왔다. 그 장면을 보는데, 이상하게 다시 서울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결국 나는 한 달을 충분히 쉬고, 바로 종합병원에 재취업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걸리는 것이 있었다. 예전 병원에서 함께 시작했던 동기들이 점점 연차가 쌓이고,

능숙하게 자신들의 자리를 지켜가는 모습을 보며 왜인지 모르게 후회가 밀려왔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다짐했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완벽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해도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부끄럽지 않게 살아보자고.


누군가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버티고,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배우고, 그렇게 내 속도를 지키며 걸어가자고 다짐했다.


언젠가 다시 흔들릴지라도, 이번에는 쓰러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캐나다에서 간호사로 일을 시작하고 나서, 문득 예전에 겪었던 나의 첫 사회생활이 자주 떠올랐다.


여기서는 누군가 나를 괴롭히거나, 언성을 높이며 나를 몰아세우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버거운 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왜냐하면, 신규 때처럼 ‘나는 너무 부족하다’는 느낌이 캐나다에서도 다시 찾아왔기 때문이다.


영어도 잘 알아듣지 못했고, 시스템도 낯설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환자를 받을 때 어떤 표현을 써야 할지조차 모르겠었다. 인계도, 노티도, 모든 게 처음이었다.


여기 학생들은 실습 때부터 환자를 직접 간호하고, 처치를 하고, 인계까지 스스로 해낸다. 그래서 처음엔 나는 학생들보다도 더 부족했다


그래도 지금 돌이켜보면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았다. 내 버디 간호사는 차지도 맡는 경력 많은 선생님이었는데, 어느 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널 가르치면서, 나도 처음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 다시 배울 수 있었어. 고마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셀 수 없이 많았다. 환자에게 욕을 먹는 날도 있었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면서 뒤에서 은근히 나를 무시하고 수군거리는 동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첫 사회생활을 너무 힘들게 겪어서 그런지 그 모든 순간을 울면서도 버텼고, 그러다 보니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실수하고,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고,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예전의 나는 그 힘듦 앞에서 무너졌고, 지금의 나는 그 힘듦을 통과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돌아보면, 지옥 같았던 시간들이 결국 나를 버티게 만드는 근육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들을 통해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배웠다.


앞으로도 분명 또 흔들릴 거다. 그러면 나는 또 울 거고, 또 잠시 멈출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멈추는 것도, 느려지는 것도, 내가 계속 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그래서 오늘도 조금은 흔들리면서, 조금은 불안해하면서도 나는 또 한 걸음 내딛는다.


그때의 나에게 했던 말처럼—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나를 위해 끝까지 걸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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