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몰랐던 내가 죽음을 배우기까지
나는 간호학과 실습에 나가기 전까지 한 번도 ‘죽음’을 가까이에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아마 그래서 그때의 기억이 더 또렷하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3학년.
나는 처음으로 한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마주했다. 병원에서 실습을 하던 중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환자의 죽음은 나를 깊이 흔들어 놓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내게 말을 걸고, 내가 밥을 먹여 드리던 분이었기에 더 그랬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지만,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꾹꾹 참아냈다. 복도 뒤편에서 살짝 고개를 돌려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어쩔 줄 몰라 병동을 서성이고 있을 때, 다른 환자 한 분이 나를 불러 세웠다.
“학생, 누가 돌아가셨어? “
그 말에 참았던 감정이 무너져 눈물이 흘렀고, 나는 그저 고개를 저어 보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슬픔은 잦아들었지만, 마음 한편이 조용하게 눌린 채로 남아 있었다. 그 첫 경험은 아무 말 없이 오래 머물렀다.
그 뒤로도 비슷한 순간들이 이어졌다. 죽음은 내가 선택한 이 길 위에서 계속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 되었다.
어릴 적 나는 양가의 조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신 것이 감사했다. 가까운 관계였기에 자연스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그 덕분에 지금도 선명한 추억들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조부모님의 죽음은 언젠가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내게 닿았을 때는 예상보다 훨씬 크게 흔들렸다.
2년 전, 캐나다로 떠나기 한 달 전, 외할머니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할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셔서, 일요일마다 사촌들과 함께 교회에 가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는 할머니가 해주시던 비지찌개를 유난히 좋아했다.
할머니는 드라마와 홈쇼핑을 즐겨보셨고, 언제나 멋을 잃지 않는 분이었다. 손톱엔 늘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었고, 허리가 좋지 않으셔서 꾸준히 수영도 다니셨다.
가끔 부모님 가게에 들러 수다를 떨다 가시기도 했고, 우리 집 강아지 ‘둥이’를 꼭 ‘뚱이’라고 부르시며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도 떠오른다.
그런 할머니가 점점 기억력을 잃으시더니 결국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외할아버지께서 직접 곁을 지키며 간호하셨다.
나는 캐나다로 떠나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드리기 위해 엄마와 함께 찾아갔다. 몇 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다 보니, 환자의 모습을 보면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걸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통통하시던 할머니의 몸은 어느새 뼈만 남은 듯 여위어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죽음을 떠올렸다.
식사도 잘하시던 분이 며칠째 거의 드시지 못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 우리 약속해요. 밥 잘 먹기로, 알겠죠?”
그 말에 할머니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 작은 움직임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울먹이며 말했다.
“할머니… 돌아가셨어.”
“엄마, 울지 말고… 우선 할머니 어디 계신지 물어보자. 그리고 엄마, 알지? 마지막 순간에도 들을 수 있으니까… 꼭 말해줘. 고맙다고, 감사했다고, 사랑한다고.”
말을 꺼내는 내 모습이 스스로 봐도 참 간호사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작 나는 눈물이 나지 않았다. 마음이 얼어붙은 것처럼 아무 감정도 따라오지 않았다. 그저 멍했고, 현실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나는 울지 않았다.
죽음을 처음 본 학생이었던 나, 여러 죽음을 지나온 간호사인 나, 그리고 처음으로 가족을 떠나보내는 나까지… 마음속에서 뒤섞였지만 눈물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엄마가 너무 슬퍼하니까, 나는 그 옆에서 강한 딸이 고만 싶었다.
그러다 마지막 작별을 마치고 비상구 계단에 다다른 순간, 그제야 무너졌다. 나는 그 자리에서 오래, 그리고 크게 울었다.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럽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 곁을 스쳐간다. 하지만 그 눈물 속에서 나는 알았다. 죽음 앞에서 강함이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그 슬픔을 품고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날 계단에서 흘린 눈물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주는 작은 위로였다.
언젠가 또다시 이별이 찾아와도, 나는 그 순간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눈물은 나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이제는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