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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첫 마음

by 예린

2023년 12월 1일.

책방의 문을 처음 열던 날이다.


그날 아침, 남편과 함께 출근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전하고 싶어서

아이보리 톤의 옷을 맞춰 입었다.


책방 안에 환한 기운이 스며들길 바라며,

밝은 마음으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싶었다.

온 마음으로 꾸린 작은 책방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처음 켜는 조명,

처음 내리는 커피와 차.


수없이 연습했던 메뉴였지만,

막상 손님 앞에 내보내려니

손끝이 조금씩 떨렸다.


혹시 아무도 오지 않으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행히, 언니가 그림책 모임 팀과 함께

첫 손님이 되어주었다.


한 분이 조용히 그림책을 읽어주시고,

다른 분들은 조용히 귀 기울이며 집중하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책방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분들이 주문해 주신 음료가

책방의 첫 주문이었다.


무엇보다,

작은 크리스마스처럼

반짝이는 화분까지 준비해 오신 마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자꾸만 그쪽을 돌아보게 됐다.


그러던 중,

처음 보는 손님 한 분이 들어오셨다.

정말로 이 책방에 온, 첫 손님이었다.


밝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넸다.

너무 신기해서 계속 그쪽을 보고 싶었지만,

혹시 부담스러우실까 봐 애써 시선을 돌렸다.


그분이 책 소개 쪽지를 읽고 계신지,

어떤 책 앞에 머물러 계신지

자꾸 궁금해져서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꽤 천천히, 조용히 책을 살펴보시던 그분은

그냥 나가실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잠시 후, 한 권의 책을 들고

카운터로 오셨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장기하 작가의 책이었다.


그 책은 한동안 나의 좌우명이었고,

오픈 전부터 가장 자신 있게 진열해 두었던 책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계산을 하며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누군가도 좋아해 주는 순간.


이렇게나 벅찬 일이구나.


그날, 책방에서 팔린 첫 책이었다.

그 책이었기에, 더 의미 있었다.


내가 고른 책이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찼다.


계속 상상만 하던 순간이

현실이 된 것이었다.


뒤이어 다른 손님들도

하나둘 책방을 찾아주셨다.


전날 밤,

정말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으로 밤잠을 설쳤던 게 무색할 만큼

책방은 사람들의 온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어릴 적 친구도

책방에 들러 주었다.


보낸 이가 적히지 않은 화분이 도착했을 땐

누구일까 궁금해하고 있었는데,

곧 케이크를 들고 들어온 친구가

“화분 잘 받았어?” 하고 웃으며 물었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졌다.

“예지였구나.”


그 마음을 알기에,

그 기쁨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알기에,

괜히 울컥했다.

오픈 이벤트로 준비한 웰컴 키트.

엽서와 볼펜, 책갈피, 선물 쿠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기뻐해주었다.

그 반응에 더 웃게 된 건 우리였다.


이곳이 정말

‘안녕한 공간’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내가 바라던 마음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은 안도감으로 바뀌었다.


그날,

책방을 찾아주셨던 한 손님이

책 한 권을 고르고

카운터로 다가오셨다.


『어서 오세요, 펫로스 상담실입니다』


책을 보는 순간,

그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그 제목만으로도

마음속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앉았다.


손님은 반려견과 함께 책방에 오셨고,

나 역시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동시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책을 고르는 사람의 마음이 깊이 전해졌고,

같은 마음으로 얼굴을 마주 보니

함께 눈물이 고였다.


책방을 시작하자마자

내가 더 많은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날은 책 보다

사람에게 더 마음이 가던 하루였다.


찾아와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뿐이었는데,

어느 손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우리 동네에 책방이 생겨서 정말 감사해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나도 정말 진심으로 생각했다.


책방을 열길,

참 잘했다고.


그날의 장면 하나하나가

오랫동안 마음을 따뜻하게 비춰줄 것 같다.

안녕, 책다방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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