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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때

by 예린

불이 켜지고 나서도,

우리는 아직 이 공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정하지 못했다.


주황빛 조명이 따뜻하게 밝혀주었고,

테이블들도 자리를 잡았고,

커다란 책장을 둘 자리도 정했지만—

이곳에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할지는

계속 고민이 됐다.


책방과 서점 중에서는

어쩐지 ‘책방’이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았다.

북카페라고 하기엔

커피보다 책에 마음이 더 쏠려 있었고,

책방이면서, 카페라는 점도 조심스럽게 알리고 싶었다.


어떤 말로 이곳을 불러야,

이 공간도 제 존재를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말이면 좋을까.

며칠이고 마음속 단어들을 조합해 보았다.

그중 끝까지 남았던 건 두 가지 이름이었다.


하나는,

안녕, 책多방.


안녕동에 있는 책방.

한글로 읽으면 ‘안녕, 책방’.

한자와 함께 읽으면 ‘책多방’.

책이 많은 방,

따뜻한 차를 내어주는 공간,

사람들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

이 모든 의미가 조용히 담긴,

다정한 이름이었다.

남편도 좋다고 했다

.

이 이름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려니 어딘가 어색하고, 조심스러웠다.

괜히 더 예쁜 이름이 있을 것 같고,

조금만 더 고민하면 더 나은 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쉽게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다방’이라는 말이 너무 촌스럽게 느껴지면 어쩌지.

정말 차만 파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너무 평범하지는 않을까.

검색은 잘 될까.

이름 하나에 생각이 많아졌다.

그러다 또 하나의 이름이 떠올랐다.


치읏책방.

(맞춤법은 ‘치읓’이지만, 어감과 의미를 살리기 위해 ‘치읏’으로.)


책, 차, 치유.

책방을 이루는 세 가지 단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었다.

폰트에 따라 ‘치유책방’처럼 보이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을 것 같은,

조금은 유니크한 이름.


하지만 설명 없이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어서

끝내 망설여졌다.


마침내 가족투표.

‘안녕, 책다방’과 ‘치읏책방’이 엎치락뒤치락했다.

그 접전 속에서,

내 마음이 이미 어디에 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조용히 ‘안녕, 책다방’을 응원하고 있었던 거다.


이름을 결정한 날,

우리는 작은 목소리로 그 말을 불러보았다.


“안녕, 책多방.”


그 말이 마치 우리를 불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야, 이 공간을

하나의 존재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채워야 할 것들이 많았지만,

이름 하나로

비어 있던 마음 한 켠이 살며시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매일 아침 문을 열며

그 이름을 조용히 불러본다.


안녕, 책多방.


공간도 그 이름에 조금씩 익숙해지는 듯했다.

조명이, 책장이, 커튼이—

이제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가는 것처럼.


2023년 12월 1일.

그날, 우리는 ‘안녕, 책多방’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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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이 글을 올리는 지금,

책방은 현재 쉬어가는 중이에요.

(회복할 때까지, 아주 잠시만요)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인데,

처음 책방의 문을 열던 날의 이야기를

이 시기에 꺼내게 되니

마음이 조금 복잡하고도 묘합니다.

그때의 설렘과 지금의 불안이 겹치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더욱,

지난 회차에 남겨주신 댓글 하나하나가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답글은 드리지 못했지만,

저는 가만히 오래, 여러 번 읽고,

고맙고 또 고마운 마음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얼른 회복하고, 다시 마음과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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