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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오지 않는 날

by 예린

책방을 시작한 뒤로

가장 좋아하게 된 소리가 있다.

문 위에 달린 풍경이 흔들릴 때 나는 작은 소리, ‘딸랑’.

그 소리가 울릴 때면,

누군가 책방을 방문했다는 뜻이니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몸 상태가 좋고,

날씨가 화창하며 맑다고 해서

그날 책방에 손님이 올지는 알 수 없다.


어떤 날엔 비가 와서, 눈이 와서, 더워서, 추워서, 따뜻해서

그래서 나들이 가기 좋아서 조용하고,

또 어떤 날엔 비가 와서, 눈이 와서, 더워서, 추워서, 포근해서

그래서 책방을 찾는다.

이유는 같아도,

결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그 예측할 수 없음 속에서,

나는 매일 문을 연다.


책방은 언제나

누군가를 조용히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찾아주시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반갑고,

그 마음이 늘 감사하지만

먼저 말을 건네도 괜찮을지,

그 거리감을 조심스럽게 가늠하게 된다.

그래서 기쁜 마음보다 천천히,

작은 인사로 마음을 건넨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낮 12시까지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그래서 그 시간에 가장 많이 책을 읽는다.


한 장, 또 한 장 넘기다 보면

어느새 60페이지를 훌쩍 넘어간다.

문득 시계를 보면

두 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


책은 재미있지만,

온기가 빠진 공간은

이상하게도 조금 쓸쓸하다.


괜히 음악을 바꾸고,

읽던 책을 덮은 채

카운터 밖으로 나와 책방을 한 바퀴 돌아본다.


책만 읽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마음이 슬그머니 흔들린다.

중심을 잡는 일은

생각보다 더 어렵다.


‘딸랑’ 하고 고개를 들면

무언가를 판매하러 오신 분일 때도 있다.

그럴 땐 나도 모르게

기운이 빠지고 한숨이 나온다.


아침 일찍 열심히 청소하고,

반듯하게 정리해 둔 책들도

어쩐지 빛이 바랜 흑백 사진처럼 느껴진다.


그런 날이면

생각이 자꾸만 꼬리를 문다.

북카페인데 메뉴가 너무 단조로운 건 아닐까.

내가 고른 책들이

이 동네의 취향과 맞지 않는 건 아닐까.

저번에 오신 분께

너무 들뜬 마음으로 책 이야기를 꺼낸 게

혹시 부담스러웠던 건 아닐까.

마음은 어느새

좋았던 기억들까지 문제 삼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런데도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간판 팻말을 ‘OPEN’으로 바꿔두고,

책장을 정리하고, 커피를 데운다.


오늘은 아무도 오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또 어느 날, 조용한 오후

딸랑—하는 풍경 소리와 함께

낯선 얼굴 혹은 반가운 이가

조심스레 문을 밀고 들어올지도 모르니까.


그날의 내가 고른 책 한 권이,

누군가의 하루에

아주 작은 위로가 될 수도 있으니까.


아무 일 없이 조용히 혼자 보낸 시간들도

안녕 책다방의 추억이 된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어도

그 안에서 나는 책을 고르고,

읽으며, 마음을 쌓아간다.


의미 없다고 생각했던 날들,

그저 견디기만 했던 시간들이 쌓여

어느덧 책방은

2년째 문을 열고 있다.


돌아보면,

아무도 오지 않았던 날들 역시

이 공간의 일부였고,

나의 일부였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 하루하루를 믿으며

오늘도 책방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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