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일이 있다면,
첫 번째는 독서모임, 두 번째는 북토크였다.
좋아하는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즐거울까?
좋아하는 문장을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다른 사람의 밑줄은 나와 다를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전혀 다른 시선일까?
이런 상상을 하면 마음이 들뜨곤 했다.
단지 책을 읽는 모임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었다.
책방을 준비할 때,
책장은 오롯이 나의 취향으로 채웠다.
당연히 수필과 소설이 중심이 되었고,
그중에서도 나의 좌우명이 된 『상관없는 거 아닌가?』는
첫 독서모임 도서로 점찍어두고 있었다.
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쩐지 나와 비슷한 결일 것 같았다.
책과 사람은 닮은 데가 있으니까.
2023년 12월 1일, 안녕, 책多방을 오픈했고
이후 12월 22일 금요일 저녁 7시,
첫 독서모임을 열겠다고 공지글을 올렸다.
크리스마스 주가 있는 금요일이라
분위기도 좋을 것 같고,
나름 철저하게(?) 계산된 일정이었다.
내가 꿈꾸는 독서모임은 이랬다.
누군가가 독주하지 않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각자의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모임.
그래서 최대 인원은 6명.
남편과 나, 2명을 제외하고 4명을 모집하기로 했다.
그렇게 글을 올렸다. 그리고 기다렸다.
그런데...
정말로 아무도 신청하지 않았다.
12월 8일에 모집글을 올렸고,
며칠이 지나도록 신청은 없었다.
처음이니까 괜찮다고,
다음 기회가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보았지만
기대했던 만큼 실망도 컸다.
책이 문제였을까,
날짜가 애매했을까,
우리 책방 자체가 별로였던 건 아닐까.
이런저런 생각이 마음을 구불구불 지나갔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첫 독서모임이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그저 함께 읽고 싶었을 뿐인데,
독서모임을 시작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그래도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책을 함께 읽는다는 건 어쩌면
내가 이 공간을 혼자만의 세계로 두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했다.
누군가와 읽고, 듣고, 나누고 싶었다.
그 마음 하나로, 다시 차근차근 준비를 시작했다.
독서모임은
내가 책이 좋아서 책방을 시작한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책이 같은 사람은 나와 결이 비슷할 거라는 믿음.
어쩌면 사람에게서 상처받았지만
사람을 한 번 더 믿어보고 싶은 희망과 기대였다.
사람이 싫다고 말하면서도, 사람이 쓴 글, 책이 좋았으니까.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소설에,
다른 사람의 인생인 수필에 마음을 빼앗겼으니까.
나와 같이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책으로.
발제를 준비하는 일이 즐거울 만큼 애정이 가는 책으로.
장르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잡고,
화요일 오전, 목요일 오후 두 개의 시간대로
‘화목한 독서모임’을 열기로 했다.
그리고 아주 우연처럼,
첫 북토크 일정도 함께 잡히게 되었다.
그렇게 첫 독서모임은
곧 북토크가 예정된 정태현 작가의
『때론 버텨야만 하는 날들이 있다』로 시작되었다.
참가자는 나와 남편, 그리고 신청자 두 분.
총 네 명.
작고 조심스러운 시작이었다.
나는 그날의 분위기를 이렇게 적어두었다.
책방을 오픈한 12월에는 독서모임에 아무도 신청해 주시지 않아
이번 모임이 정말 긴장이 많이 됐어요.
기대도 크고, 잘 해내고 싶었던 첫 모임이었거든요.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처음 와보는 공간.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시간이었지만,
책에 대한 기대감은 모두 같은 눈빛에 담겨 있었어요.
책 속 한 문장이 대화의 시작이 되었고,
이야기 속에서 우리 각자의 고민과 위로가 흘러나왔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자
줏대 없이 살아서도 안 되지만,
자기 신념대로만 살고자 해도
결국 사회로부터 고립되기 마련이다."
이 문장을 함께 읽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책에는 ‘생선 선생’이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이 등장한다.
자기 방식이 정답이라는 듯 단호하고,
타인을 향한 말들에 배려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
모두가 피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참여자 중 한 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예전의 제 모습이 생선 선생 같았던 것 같아요.”
그 한마디가 공기를 바꿔놓았다.
처음의 긴장은 스르륵 풀리고,
우리는 조금 더 진심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었다.
독서모임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가장 작은 공동체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그날 이후, 나는
내가 꿈꿨던 ‘독서모임’에 대해
더욱 애정을 갖게 되었다.
책은 혼자 읽어도 좋지만,
함께 읽고 나눌 때 비로소 마음이 열리고,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긴다.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반짝이는지 알기에,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마음을 쓰고 있는 일이
바로 이 ‘함께 읽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