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늘 사람들이 모여 있다.
책을 고르기 어려울 땐 나 역시 그 앞을 서성인다.
가만히 순위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요즘 사람들의 고민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자기계발서들.
사람들 모두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구나.
그 마음이 책 표지와 제목들 너머로 전해진다.
그러다 보면,
나도 이 책을 사야 하나?
읽지 않으면 뒤처질까 봐
괜히 마음이 조급해질 때가 있다.
물론 자기계발서가 위로가 될 때도 있다.
하지만 어쩔 땐 괜히 나를 채근하는 것 같아
째려보게 된다.
지금도 충분히 애쓰고 있는데,
더 노력하라고, 더 달리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런 마음이 들면, 나는 다시 조용히 책을 둘러본다.
대형서점 매대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다가
눈길이 닿는 표지,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
마음이 움직이는 제목 앞에 멈춰선다.
책장 중간쯤을 펼쳐
몇 장 읽어본다.
그다음 장이 궁금해지면
지체 없이 계산대로 향하고,
그렇지 않으면
'다음에'라며 마음에 담아둔다.
책이 놓인 자리에 따라
사람의 시선이 머물고 발걸음이 멈추듯,
작은 책방에서도
사람과 책이 조용히 눈을 맞춘다.
안녕, 책다방에는 베스트셀러 코너가 없다.
한동안 책방 한켠에
‘우리 책방 베스트셀러’를
적어둔 적도 있었지만
그러면 다른 책들이 덜 사랑받는 것 같아서
어느 순간부터는 적어두지 않게 되었다.
그 대신 책 표지 앞에
손바닥만 한 메모지를 붙여둔다.
좋았던 문장, 짧은 감상,
애정 어린 추천 한마디.
내향적인 손님이
추천을 부탁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내향적인 책방지기인 내가
선뜻 먼저 말을 건네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까.
그 마음을 대신해
텍스트로 살며시 마음을 전한다.
하지만 손바닥만 한 메모지 위에선
그 마음을 다 담기 어렵다.
어느 날엔 꼭 직접 전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멀리서도 결이 닮아 보이는 손님,
책 앞에 오래 머무는 조심스러운 눈빛.
그 앞에서 나의 마음도 설렘에 일렁인다.
-그 책 읽어보셨어요?
-그 작가님 좋아하시나요?
-저도 정말 좋아해요.
말을 건네고 싶어진다.
분위기가 괜찮아 보이면
"저 이 책 너무 좋아해요."
짧은 문장 안에 진심을 담아 본다.
-이 책은 두께에서 다들 놀라지만
뒷이야기가 계속 궁금해서 빠르게 읽게돼요.
-제가 선물받은 시집인데
마음이 그늘질 때 위로가 되었어요
힘내라는 응원의 말이 아니라
나의 아픔에 공감받고 싶을 때 읽으니 좋더라고요.
-저도 이 작가님 좋아해요-!!!
신간은 언제 나올까요?
작은 책방에서는 시선도 조심스럽다.
책을 고르는 손님의 마음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궁금한 마음도 살짝 감춰둔다.
그런 순간, 말하지 않아도
책이 사람을 알아보는 건 아닐까
하는 순간들이 있다.
양귀자 작가님의 『모순』이 그런 책이었다.
오래전에 나왔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이야기.
하지만 우리 책방에서는
좀처럼 짝을 만나지 못해
한동안 조용히 놓여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두 권이 판매됐다.
하루 종일 있어도
책 한 권 팔리지 않는 날이 있는 걸 생각하면,
같은 책이 하루에 두 권 나가는 일은
의미가 큰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 책,
다독하는 책,
다시 읽을 때 마다 다른 문장이 보이는 책
하지만 조용히 놓여져 있던 책
한동안 짝을 만나지 못했지만
어느 순간에 운명처럼 선택되는 걸 보고 생각했다.
책에도, 글에도 인연이 있는 것 같다고.
『나로서 충분히 괜찮은 사람』
『모든 요일의 여행』
조용히 들어와 두 권을 고른 손님.
다정한 미소를 띤 채,
아무 말 없이 책을 내미셨다.
계산하며 바라본 책의 제목을 보며
'쉼이 필요하셨던 걸까' 생각했다.
하루의 끝이 책과 함께
조금씩 회복되시기를 바랐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대화는 늘 즐겁다.
읽고 좋았던 책을
나와 취향이 닮은 사람에게
살짝 내어 보이는 일.
그게 내가 책 앞에서 오래 머무는 이유다.
여전히 책을 고른다는 건 조심스럽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다정하게 두드려보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래서 오늘도 말을 고르고,
목소리를 내어본다.
방해되지 않을 만큼 조용히,
그러나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