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책방의 공기가 아주 무겁게 느껴진다.
북토크가 끝나고, 독서모임도 없는 평일 오후.
책장 너머로 햇살이 스며드는 조용한 공간에서,
이런 생각들이 밀려든다.
‘지금 이 방향으로 계속 가도 되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속도보다 방향이라고.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고.
자신만의 속도로 가면 된다고.
하지만 요즘의 나는,
그 방향이 틀렸으면 어떡하나,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진심이 있고, 다정하게 말을 건넬 줄 아는 사람이라고도. 그래서 느리더라도,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믿음이 틀렸다면?
진심과 다정함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일이 세상엔 너무 많고,
꾸준함이 때로는 잘못된 길을
더 오래 걷게 만드는 건 아닐까.
책방을 하며 받았던 마음들이 너무 커서
늘 고맙다는 말로 이 공간을 설명하고 싶었는데,
어느 날의 나는 자꾸만
마음 안쪽 어둠으로만 생각이 향한다.
하루 종일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
도서 입고를 앞두고
카드 내역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다가,
한숨을 쉬고 커피를 내린다.
괜히 목이 조이지도 않는 티셔츠를 손으로 당겨
느슨하게 만들어 보지만,
마음은 도무지 느슨해지지 않는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아니, 이걸 계속할 수는 있을까?
SNS속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가야할지
제대로 된 방향을 정한 채
빛나는 모습으로 존재한다.
엄지손가락을 바쁘게 튕기며
스크롤을 내릴 수록
내 마음의 확신도 점점 내려간다.
사실, 책방을 해서 힘든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해도,
나는 이렇게까지 고민하고
누군가에게 너무 미안해하고,
지나치게 오래 붙잡아 생각하고.
때론, 힘든 마음을 꾹 누른 채
웃는 데에 익숙한 사람.
그래서 책방은 나의 심연을 비추는 거울 같다.
고요한 날일수록 정확히 비추고,
그런 날이면 마음은 더 자주 흔들린다.
책방을 운영하며
내가 받은 따뜻함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작은 공간을 아껴주는 사람들,
책방에 들러 방명록을 쓰고 편지를 건네준 사람들,
독서모임에서 책을 통해 마음을 나눠준 사람들.
그 다정한 말들과 얼굴들이
무너지는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 모든 마음이 소중해서,
따뜻한 이야기만을 써서 기억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의 그림자 또한 이 책방에 속한 감정이라는 걸 이제는 부정할 수 없다.
햇살이 드는 날만이, 이 공간의 전부는 아니다.
비가 오는 날, 바람이 세게 부는 날,
아무도 오지 않는 날.
그 모든 날이 모여, 책방의 시간이 된다.
그리고 내가 감추고자 했던 그림자까지도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다.
그들 덕분에 내가,
아주 깊은 곳으로 가라앉지 않는다.
그들은 지치지 않고
자꾸만 숨을 쉬도록,
양지바른 곳으로 조용히 끌어당겨준다.
책방을 하며 받은 기적 같은 선물이다.
좋은 이야기보다 안 좋은 이야기가
더 오래, 더 크게 들리는 것처럼
나 역시 자꾸만, 불안이 기쁨을 덮는 날들이 찾아온다. 벗어나려 할수록 감정은 축축해져
나를 잠식한다.
그 어떤 이야기도 들리지 않는다면
지금은 불안을 봐줄 차례인 것 같다.
다시 걸어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어쩌면 불안함 속에 조용히 앉아 있는 것도 괜찮다고 조용히 속삭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