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싫은 줄 알았다.
사람과의 관계에 쉽게 지치고,
약속이 없으면 마음이 놓이면서도
혼자가 되는 건 또 두려웠다.
그래서 더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거절하지 못하고,
끝까지 웃으며 상대의 마음에 맞춰주곤 했다.
그럴수록 점점 더 나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말을 아끼는 날이 많아졌다.
상대의 기분을 먼저 살피고,
내 감정을 접는 일이 습관이 되었다.
카톡을 무음으로 바꾸고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조여왔다.
사람이 싫어서라기보다는,
그 앞에서 나를 숨기게 되는 내가 싫었던 것 같다.
그런데 책을 함께 읽는 자리를 오래 이어오다 보니
조금씩 알게 된 게 있다.
사람을 멀리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관계 속에서 오롯이 ‘나로 있기’가 어려웠다는 걸.
책이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말들이
문장 하나에 기대어 나오기도 했고,
비슷한 장면에서 울컥했다는 고백 하나에
서로의 거리가 훅 좁혀지기도 했다.
독서모임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누구의 보호자도,
어떤 직업의 누구도 아닌
그냥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리.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에 닿았던 문장을,
내가 가진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
같은 문장을 밑줄 치고,
같은 장면에서 마음이 아팠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는 갑자기 가까워진다.
서로 다른 나이, 성격, 배경을 가졌지만
비슷한 감정과 질문을 품고 있다는 걸 느끼면
그 두 시간 동안만큼은, 오롯이 '나'로 존재하게 된다.
“요즘 힘들었는데, 독서모임 가는 날만 기다렸어요.”
“발제문에 답을 생각하면서 요즘 제 마음을 처음 알게 됐어요.”
그런 말들이 쌓일수록,
사람이, 나누는 마음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날 누군가는 소리 내 울었고,
누군가는 아무 말 없이 눈빛으로 위로했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울어도 되는 시간.
책을 읽으러 왔지만, 결국 우리는 사람을 읽고 있었다.
언젠가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 죽게 되면, 독서모임 사람들한테
제일 먼저 부고장 돌릴 거예요.”
농담처럼 꺼낸 말이지만, 진심이 섞여 있었다.
같은 문장을 읽고, 서로의 안녕을 헤아리며
매주 이름을 불러주던 사람들.
어쩌면 가족보다 더 자주,
더 솔직하게 마음을 나눈 사람들이었으니까.
이곳은 단순한 책방이 아니다.
누구도 연기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서로의 안녕을 조용히 헤아릴 수 있는 자리.
평소보다 덜 다정해도 괜찮기를 바라면서,
이번에는 나를 잃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는 또다시,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