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열며 마음속에 품었던 바람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함께 책을 읽는 모임을 열어보고 싶다는 것.
다른 하나는, 좋아하는 작가님을 이 공간에 초대해
북토크를 여는 일이었다.
책을 읽는 시간은 혼자만의 대화이지만,
그 문장을 함께 이야기하면 생각이 깊어지고
그 문장을 쓴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
생각과 마음이 겹쳐져 또 다른 이야기가 된다.
그런 순간을 이 책방 안에서 함께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공간은 충분하다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매주 독서모임을 마치고 문을 닫을 때면
그 마음은 더 커졌다.
이 책방에는
작가님의 문장에서 살아갈 힘을 얻고,
밑줄을 긋고 또 읽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답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
그래도 여전히,
그 문장을 쓴 사람이 궁금하다고.
그 눈빛과 표정을 직접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꾸 커진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의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가 나누는 감정이 진심일 때마다
이 마음이 현실이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유명하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이곳에
정말 와주실까.
메일을 보내도 될까.
책방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용기 내어 메일을 보낸 어느 날,
믿기 힘든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안녕, 책多방이 드라마였다면,
‘아이 참, 해도 너무하네. 이렇게까지 된다고?’
싶을 만큼 드라마틱한 순간들이 찾아온 것이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즈음, 자주 틀어놓던 영상이 있었다.
알쓸인잡 심채경 박사님의 이야기.
“가치 판단의 중심은 내 안에 있어야 한다.”
“어떤 특정한 모습의 나만 인정하면,
그건 발레리나가 발끝으로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것과 같다.”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있는 나도 나다.”
그 말이 내게 처음 도착한 날이었다.
숨을 쉬어도 괜찮다고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다고
다정하게 안아주는 말 같았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를 읽으며
그 마음은 더 깊어졌다.
아... 이분은 말씀도 잘하시고, 글도 잘 쓰시고,
내면도 단단하시고, 심지어 예쁘시기까지 하다니.
어느새 마음은 동경이 되어 있었다.
중증이었다.
‘진짜 위로받은 순간이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밝은 밤』을 읽었을 때라고 말할 것이다.
“내게서 버려진 내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는 사실도.
그 애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관심을 바라면서,
누구도 아닌 나에게 위로받기를 원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최은영, 『밝은 밤』
그 문장을 읽고 울었다.
울고 나서도 마음이 오래 울렁거렸다.
아마 그때가,
내가 나에게 처음 손을 내민 순간이었다.
몰랐던 내 감정에 처음으로 이름을 붙여준 사람.
그분은 어떤 분이실까.
멋대로 나와 닮았다고 느꼈다.
정말 그러실까.
그 궁금함을 품은 채,
오랫동안 마음속에서 작가님을 불렀다.
책방을 처음 꿈꾸게 된 계기도
한 문장이었다.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
…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핏기 없이 지내던 시절.
『휴남동 서점』의 ‘영주’를 보며
나도 이런 공간을 꿈꿔도 되겠구나,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그런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손님들이
“여기, 휴남동 서점 같아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을 작가님께 꼭 전하고 싶었다.
“작가님 덕분에 책방을 꿈꿨고,
책방을 보고 사람들이
휴남동서점 같다고 말해줘요.”
그리고,
그분들이 정말 책방에 오셨다.
심채경 박사님이 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날.
심장이 쿵쿵 뛰었다.
소개해야 할 말도 잊을 만큼 긴장했다.
질문이 너무 얕진 않을까.
괜히 작아지는 마음이 자꾸 들었다.
그런데 박사님은
내가 준비한 질문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들어주시고,
차분하게, 열정적으로 답해주셨다.
어떤 질문이었어도 잘 받아주셨을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이 오래도록 나를 다독였다.
최은영 작가님의 전화를 받았을 때는
한참을 휴대폰 화면만 바라봤다.
번호가 떠 있는 걸 보며
이거 저장해도 되는 건가요,
진짜 꿈 아닌가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소리를 왁 하고 질렀다.
그리고 실제로 뵈었을 땐,
상상보다 더 다정하고 깊은 분이었다.
배웅해 드리는 내내 마지막일까 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황보름 작가님이 오셨을 때는
그야말로, 내 꿈을 초대한 기분이었다.
그 책이 없었다면
안녕, 책多방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작가님과
이 공간 안에 함께 있다는 사실이
내가 만든 책방이, 휴남동 서점이,
나를 안아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작가님을 마주 보고 앉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낭독을 들으며
그 책을 처음 읽던 내 마음을 떠올렸다.
휴남동 서점이 영원하길 바라는 나의 마음처럼
안녕, 책多방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진심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날, 책방의 공기까지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기적 같았고, 꿈만 같았던 시간이었다.
유명하지도, 넓지도 않은
작은 안녕 책다방을
흔쾌히 찾아주신 작가님들이 참 많다.
첫 북토크를 함께해 주신 정태현 작가님,
귀여운 할머니의 꿈을 심어주신 하정 작가님,
첫 팬심을 느끼게 해 주신 김신회 작가님,
여행의 설렘을 전해주신 김민철 작가님,
멋진 작가, 멋진 사람을 보여주신 김중혁 작가님,
유쾌하고 호탕하신 김경호 작가님,
언제나 응원하게 되는 사랑스러운 이애월 작가님,
안녕 책다방의 1주년을 영원히 기억하게 해 주신, 보선 작가님,
시의 매력을 알게 해 주신 이제야 시인님,
상처 난 마음을 보듬어 주신 임지은 작가님까지.
책방의 공기가 달라졌던 날들.
그 시간들은 나에게
사라지지 않을
반짝이는 장면으로 남아 있다.
책방을 열며 꿈꿨던 일.
더는 막연한 상상이 아니었다.
좋아하던 사람들을 초대하고,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순간들.
그 시간 속에
내가 견뎌온 마음들과,
품어온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꿈이라고만 여겼던 날들이
어느새 정말로 내 곁에 머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