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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안녕을 기다립니다.

by 예린

숨이 쉬어지지 않던 날에는

마음을 단련하려 책을 읽었고,

좋아하는 일을 찾은 날에는

몸을 단련하려 달리기를 시작했다.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하며

내 마음에도 근육이 붙었다.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속에서

흉 진 마음에 새살이 돋았다.

아물 것 같지 않던 상처는

조금씩 단단해졌지만,

흉터가 완전히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 문득 눈에 띄는 날이면

여전히 아팠다.

상처가 난 자리는 피가 맺히고

딱지가 떨어진 아래엔

여전히 깊은 자국이 남는다.

그래도 옅어졌다는 것,

그 자체로 마음이 살아온 시간의 증거다.


깨끗한 마음으로만 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우리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며

상처를 주기도, 받기도 한다.

뜻하지 않게 주고받은 마음의 고통을

저마다 간직한 채 각자의 속도로

새살이 올라오는 모습을 지켜본다.


숨이 쉬어지지 않던 시절엔

다른 사람의 상처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내가 너무 아팠기에,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보는 일이

내 상처를 덧내진 않을까 두려웠다.


하지만 책이 매개가 되면

마음을 꺼내보는 일이 가능해진다.

모른 척하던 감정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게 되고,

누군가의 이야기 속에서

내 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게 쌓인 시간은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서로 다른 상처, 다른 시간,

다른 깊이를 가진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책을 읽는다.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새살 아래 숨겨진 흉터까지도

조금은 짐작하게 되는 순간을 맞는다.


그저 서로의 마음을

가만히, 다정히 바라보는 일.


그게 이 공간에서

가장 많이 일어난 일이었다.


마음이 지치면

몸이라도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흥미도 없었고,

늘 귀찮게만 느껴졌던 운동을

조금씩, 꾸준히 해보고 있다.


더운 날씨에 지치지 않기 위해,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하기 위해,

하루 2킬로의 느린 달리기를 이어간다.


숨이 차지만,

숨이 쉬어지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빠른 속도가 아닌,

지치지 않는 속도로 달리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그래도 어느 날은

딱지가 잘 아물었나 싶다가도

괜히 건드려보게 되는 날이 있다.

결국 떼어내 피를 보고서야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게 된다.

그 자리에 남은 자국은

살아낸 시간만큼의 깊이로 남는다.


책방을 하며 알게 된 건

누구에게나 그런 자국이 있다는 것.

다만, 서로의 흉터를

외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책을 읽고, 달리기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당신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으로

조용히 문을 연다.


안녕, 책多방.

오늘도 당신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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