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을 열기로 결심한 이후,
세상에 없던,
오직 내 마음속에만 있던 공간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시작할 책방은
10평 남짓한 사각형 공간이었다.
공간이 꿈이라면,
꿈을 1평만 갖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10평이라니.
내게는 10평이 100평처럼 벅찼다.
사각형 모양, 유리창 너머로 안이 보이는 구조,
사소한 것 하나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없었다.
처음 보는 공간인데도
마치 오래전부터 기다려온 장소 같았다.
계약 전에도, 계약 후에도, 우리는 매일 그 앞에 섰다.
아무도 없는 유리창 너머로
아직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그 빈 공간을
조용히, 오래 바라보았다.
책장을 어디에 두고, 테이블은 몇 개가 좋을지.
남편과 나란히 창에 붙어
머릿속에만 있던 공간을 천천히 펼쳐보았다.
행복한 상상이었다.
매일 조금씩 다른 구도를 떠올렸고,
그 상상이 점점 구체적인 형태를 갖춰갔다.
남편과 나는
마음이 가장 복잡했던 시기에
매일같이 독산성을 올랐다.
이상하게도,
그곳에 가면 마음속 말들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조용히 말하고,
가만히 듣고,
때로는 아무 말도 없이 걷기도 했다.
숨이 조금씩 쉬어졌고,
마음속에 남아 있던 것들이
산에 스며드는 것처럼 비워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좋은 것들로 천천히 다시 채워졌다.
내가 힘들었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었고,
당신이 힘들다는 걸 나도 알고 있었다.
산은 아무것도 묻지 않아서 좋았다.
책처럼, 그저 곁에 있어주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아주 조금씩
마음이 나아지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책방을 계약하고 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독산성에 올랐다.
절 위로 올라가 내려다보면,
아주 작게 책방이 될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이게 다 독산성의 정기를 받은 덕분 아닐까?”
우리는 그렇게 웃었다.
책방을 열면 자주 오르지 못할 테니,
준비하는 동안 더 자주, 더 부지런히 올랐다.
책방까지 걸어 내려오는 길.
처음으로, 진심으로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은,
아직 조심스럽고 작은 마음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 마음을 따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보기로 했다.
지금부터.
그리고 그 조용한 결심은,
작은 불빛처럼
우리의 삶을 천천히 비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