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참, 나를 잘 모르던 시기였다.
일은 그만뒀고,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버거웠다.
숨이 차오르던 날들이었다.
책을 보며 겨우 숨이 쉬어지기 시작하자,
이번엔 살 길이 걱정됐다.
서른 중반.
“이제 뭐 하지?”라는 질문만
하루 종일 마음에 떠돌았다.
다시 사회로 나갈 수 있을까.
지하철이나 버스 같은 붐비는 공간에선
숨이 턱 막혔고,
면접이라는 단어 앞에선
온몸이 얼어붙었다.
하지만 숨이 쉬어지지 않는 것보다
더 두려운 건
‘아무것도 아닌 나’였다.
어떤 날은, 무언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동산 공부를 해볼까.
하지만 숫자에 약한 내가 할 수 있을까.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다시 무언가를 시작한다면
책과 함께 있는 삶이었으면 했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 보게 된다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무해한 사람들과
조금씩 관계를 다시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삶이 내게 다시 허락될 수 있을까.
어떤 날은, 밖에 나가는 일조차 버거웠다.
미래가 불투명해질수록 현재조차 흐릿해졌다.
그럴 때마다 나를 다독여준 건
역시 책이었다.
『저, 청소일 하는데요?』를 읽고
청소업체를 해볼까 싶었다.
사람과 마주하지 않아도 되고,
성실함으로 버틸 수 있는 일.
엄마도 아프고 난 뒤 혼자 청소 일을 해오셨기에
왠지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과호흡이 와도 잠깐 쉬면 되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또 벽이었다.
혼자서는 감당이 어려웠고,
엄마에게 말하자니 괜히 걱정만 끼칠 것 같았다.
그렇게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이것도 아니구나, 다시 고개를 저었다.
머릿속에선 수십 가지 일을 상상했지만
정작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나는 책방을 하고 싶었다.
문장을 읽는 그 시간이
나를 잊지 않게 해 주었고,
내가 나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선뜻 말할 수 없었다.
'책방이라니. 내가?'
돈도 많이 들 테고,
공황이 또 오면 어쩌지.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럴 만한 사람이 나일까.
그 마음을 웃으며 넘기려 했지만,
희미해지기는커녕 자꾸만 또렷해졌다.
책을 고르는 걸 좋아하는 나.
책을 사는 걸 좋아하는 나.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나.
책에서 위로받은 나.
그런 내가 만든 공간이라면
누군가에게도,
아주 잠깐이라도 숨을 고를 수 있는 자리가 되지 않을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처럼.
무해하고 다정한 공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수천 권의 책을 읽은 사람도 아니었고,
전문적으로 책을 소개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서점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니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책만 팔아서 버티긴 어렵다.”
“커피를 함께 팔아야 겨우 운영이 가능하다.”
나는 커피를 전문적으로 내릴 줄도 몰랐고,
커피머신을 살 여유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책방이 하고 싶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하면 안 되는 걸까?
나는 누구보다 오래 짝사랑해 온 사람이었다.
책이 없었다면
숨 쉬는 법조차 잊었을지도 몰랐다.
그 감정, 그 기억을
나는 쉽게 배신할 수 없었다.
누군가가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독이는 순간,
그 시간을 내 공간에서 함께하고 싶었다.
방법이 없을 줄 알았던 어느 날,
은인처럼 나타나
자신의 책방 운영 노하우를
아낌없이 나눠주던 ㄱ책방지기님.
그 따뜻한 마음을 나는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의 다정한 마음을 받아
나는 한편에 자리 잡고 있던
내 마음속 말을 꺼냈다.
“저, 책방 하고 싶어요.”
물론 불안은 여전했다.
결정해 놓고도 흔들렸고,
다시 망설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떠올렸다.
“나는 남을 위해 일을 하는 순간에도
나를 위해 일해야 한다.
… 일을 하는 삶이 만족스럽지도
행복하지도 않다면,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에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까.”
—황보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p.343
나는 단 한번의 주어진 인생을
책과 함께 살아보기로 했다.
“저, 책방 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