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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Nov 22. 2022

앗, 만지면 안 되는데

이 이야기를 괜히 적었다가 신고당할지도 모르겠다. 2020년대에 학생을 만지는 일이 얼마나 미친 일인지 안다... 아니, 모르나 보다. 그러니까 이러고 있지. 다진이를 건드리고는 얼마나 오래 불안감에 시달렸던가.

 

스킨십을 좋아하는 편인데 그게 남들보다 조금 과한 감이 있다. 엄마에게 장난을 칠 때면 가볍게 어깨를 문다. 숙소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친구들을 보면 달려들어 한바탕 깔아뭉개고 싶은 욕망을 강하게 느낀다(물론 자제한다. 167cm의 성인이 덮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흔치 않다는 사실은 나도 안다).



나는 변태인가 자문하던 어느 날, 사랑의 언어라는 체계를 알게 됐다. 여기에 따르면 사람마다 주로 쓰는 사랑의 언어가 있다고 한다. 내 경우 신체접촉이 주 언어였다. 우울한 날 누군가가 내미는 차 한 잔이 주는 따스함이 있고 어깨를 두드려줄 때 오는 안정감이 있는데 나는 후자에 더 감동을 받는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한 뒤로 좋아하는 사람을 깨물고 싶어 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지는 않기 시작했다.


물론 취향을 내세우기에 앞서 전제조건이 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노래 부르는 취미가 있다고 새벽 샤워를 하며 낭만고양이를 열창하면 안 되는 법이다. 스킨십도 비슷하다. 포옹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덥석덥석 상대를 안으면 곤란하다. 나보다 허용 범위가 좁은 사람의 기준에 행동을 맞추는 것이 예의다. 교사는 경우, 학생을 만지면 안 된다. 이건 애초에 허용 범위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을 만지지 않는다. 당연한 원칙이지만 이를 어기지 않기 위해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운동부 아이들의 빡빡 깎은 머리를 쓰다듬고픈 충동을 억누르기 위해 주먹을 꽉 쥐어야 했고, 눈치 빠르게 시키지도 않은 뒷정리까지 해두는 기특이들을 꼭 안아주고 싶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미소로 대신했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 직장은 가늘어도 긴 게 최대 장점이다. 괜한 구설수로 가늘면서도 짧기까지 한 직장생활이 되면 곤란했다.



원칙을 어기고 다진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던 그날은 다진이와 나혜가 크게 다툰 날이었다. 싸움이야 쉬는 시간마다 몇 건씩도 일어나는 일이지만(이와 관련해서도 할 말이 많다. 왜 무조건 교사에게 찾아오느냔 말이다) 이번 건은 달랐다. 험악한 분위기 속에서 네가 날 무시했다, 너도 그랬다, 하는 소리가 오고 가더니 급기야는 내 앞에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들어보니 묵은 오해가 많았다. 나혜가 생각 없이 하는 거친 행동들이 다진이에게는 상처였고, 다진이가 말을 하질 않으니 나혜는 자기를 피하는 다진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여겼다. 나름의 중재를 펼쳤으나 집에 보내달라며 보채는 아이 13명, 오늘 보충 수업은 뭐냐고 닦달하는 아이 3명이 공존하는 마당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결국 해결된 일은 없었다. 솔직함이라는 탈을 쓴 날카로운 말들이 서로를 헤집는 10여분을 보낸 뒤 나혜는 학원에 가야 했다. 다진이는 멍하니 자리에 앉아 눈물만 훔쳤다. 다른 선생님들은 애들이 싸우면 어떻게 해결하시는 걸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반쯤 충동적으로 다진이를 불렀다. 

“다진아, 이리 와 봐.”     


다진이가 울음기가 가시지 않아 벌건 얼굴을 한 채 내 옆에 왔다. 조용히 다진이에게 팔을 두른 채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텁, 텁, 텁, 텁. 예상보다 폭력성이 느껴지는 소리와 함께 다진이와 내 사이로 진동이 퍼졌다. 다진이는 물론이고 옆에서 906÷4를 풀지 못해 끙끙거리고 있던 정환이까지도 눈이 동그래졌다.     


몇 분 정도를 그렇게 토닥이고 있자 다진이가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저 수학 한 장 풀고 갈게요.”


다진이는 말없이 수학 문제집 한 장을 풀고 집에 갔다. 해결된 일은 하나도 없었고 마음 한구석만 찝찝했다. 이래도 되나? 동성 간의 신체접촉이라고는 하지만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자면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는 사안이었다. 이미 머릿속에서는 기사 제목까지 떠올랐다. ‘초등교사 학생 성추행, 이리 오라고 하더니 어깨를 만져...’ 





결과적으로 별 일은 없었다. 굳이 별 일을 찾자면, 다정이와 나 사이에 끈 비슷한 것이 하나 생긴 정도 있겠다. 말 그대로 끈에 불과했기에 굵진 않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쳐다볼 때 왜인지 모를 끈끈함을 서로 느낄 정도는 됐다. 다진이는 그 뒤로도 교실에 남아 문제집을 종종 풀고 가곤 했다.


다정이 사건 이후 아이들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잘하는 짓인지는 확신이 없다.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어준 아이의 입가에 만족감이 번질 때, 울면서 선생님을 찾는 아이를 안아줄 때, 첫 배드민턴 서브에 성공해서 나를 쳐다보는 아이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신남을 공유할 때 느끼는 따스함을 포기 못하고 있다. 아직은 내가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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