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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장래 Jan 07. 2023

나, 너, 당신의 세계

버스 기사님은 왜 돈을 안 거슬러주셨을까

“기사님이 돈을 안 거슬러 줬다고?”

“네. 딱 봐도 초등학생 아닌데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니까요.”

아영이(만 8세)는 분통을 터뜨렸다. 돈이 500원 밖에 없는데 이대로 버스를 타면 50원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거였다. 초등학교 3학년 치고 큰 편이긴 하지만 중학생으로 보일만한 체형은 아니어서 의아했다. 아영이는 그런 적이 많다며 버스 기사들을 향한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럼 바로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바꾸는 건 어떨까?”

화제를 돌릴 겸 해결책을 제시해 보았으나 즉답이 날아왔다.

“여기가 은행이냐고 하면서 이런 거 부탁하지 말라던데요.”



아영이에게는 이런 식의 일화가 많았다. 어른들에게 당한 억울한 일들을 줄줄 읊는 아영이의 얼굴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하지 않아도 될 말이 나도 모르게 속에서 올라와 구겨 넣느라 바빴다.


‘네가 너무 예의 없게 말한 건 아니고?’

‘너무 안 좋은 면만 보지 마. 그 아저씨도 이유가 있었겠지.’



원인을 아영이에게 돌리고 있었다. 아영이라면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당당하게 들어가 돈을 바꿔달라고 요구했겠지. 쭈뼛쭈뼛 망설이는 투로 말을 걸어 도와주는 사람을 뿌듯하게 만들어준다거나 껌이라도 사면서 바꿔달라고 부탁을 하는 요령이 없었겠지.

10살 아동의 부족한 센스는 죄인가. 왜 어린이들은 ‘아이답게’ 부탁해야 하는가. 귀엽게, 저자세를 보이며 말을 해야 하는 의무 같은 건 아이들에게 없다는 사실을 되뇌며 정신 차렸다.




내가 아영이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든 이유는 공감을 못해서가 아닐까. 아영이의 입장이 되어 본 적이 없었다. 학교와 집만 왔다 갔다 하며 곱게 큰 덕이다. 늦게까지 일하는 부모님, 혼자 저녁까지 해결해야 하는 아영이와 내가 사는 세상은 엄연히 달랐다. 부모님 손을 잡은 채 마주한 내 세상 속 어른들은 점잖았고, 나를 좋아했다. 우리는 교실에 함께 앉아서 대화를 하고 있었으나, 곱게 자란 나는 아영이의 세상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디 아영이 뿐일까. 아버지의 외도로 고민이라는 친구 박에게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부대찌개 집에 앉아 같이 햄을 씹고 있지만 나는 너의 세계를 모른다. 임용고시 준비가 힘들어 그만두겠다는 최에게 감히 정신력 운운할 자격은 내게 없다. 좁은 고시원에서 몇 개월을 홀로 지낸 너의 세계에 대해 뭘 안다고.



     



아영이에게 해줄 말이 없어 조용히 지갑을 찾았다. 100원을 주며 조심히 가라고 하고 싶었으나 삼성페이 사용자인 나는 지갑조차 없었다. 오늘 기사님은 다를지도 모른다고, 우선 부딪혀 보자는 말을 하고는 보냈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영이 세계의 50원은 내 세계의 50원과 가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머리로나마 알기에 그랬다.



나, 너, 당신의 세계 앞에서 나는 침묵하려고 한다. 그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날은 오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래도 치파오를 입고 파스타를 먹어보며 이글루에서 잠을 청하는 일은, 당신의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해보겠다고 읊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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