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 이사 온 지 어느덧 7개월, 지금까지 써온 오래된 글과 현실 사이에 참 많은 갭이 생겼다. 노는 김에 브런치라도 미루지 말고 하자던 다짐은 끝내 게으름을 이기지 못했고, 대신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용기 덕에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직업을 구해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다. 아무렴,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집에서만 멀뚱멀뚱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낫긴 하지. 점점 짧아지는 하루 해에 살짝 우울해질 뻔했으니까.
얼떨결에 출근하게 된 곳은 지금 집이 있는 시골에서 기차로 40~50분. 여기에 도보 시간까지 합치면 대략 1시간 반 정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기차에 얹어져(?) 가다 보면 다른 사람들은 참 열심히도 산다 싶다. 실제로도 여기 사람들은 참 부지런히 산다고 들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부지런한가,라고 생각하면 딱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부지런한 것 같다는 느낌은 든다.)
첫 출근 전날, 한국에서 첫 출근을 준비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했다. 간단하게는 복장부터 시작해 좀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나가야 할 것인지까지. 이 나라 문화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상태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소심하게 구는 순간이 더 많다. 예컨대 나이가 몇 살인지(하지만 나이 묻는 건 그리 큰 실례는 아닌 것 같다 - 나이가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아니기 때문에), 결혼은 했는지(이건 간혹 실례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 결혼은 안 하고도 아이 낳고 같이 사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아니면 채식주의자인지. 그래도 많은 친절한 동료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걸음마 떼듯 배워나가고 있다.
물론 걱정만큼 편견도 컸다. 예를 들면, 유럽 사람들은 상당히 개인적이기 때문에 일적인 것 외에는 서로 교류를 잘 안 할 것이라거나, 자유로운 반면 통제가 안 될 것이라거나 하는. 일부는 사실이고, 일부는 생각보다 달랐다.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며, 온전한 더치 회사가 아니기(각종 유럽 국가 출신과 일본, 남미 사람도 존재) 때문에 현지 회사와는 다를 수 있다.
1) 사적인 교류를 안 한다.
- 물론 이곳 사람들은 상당히 개인적이다. 아무리 오래 같이 일을 하더라도 전화번호까지 공유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물론 알려고 하면 어떻게든 알 수 있지만!) 하지만 아무리 회사에서 만났다고 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듯하다. 다 같이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고 직원들끼리 저녁에 모여 빵을 굽거나 주말에 마트를 함께 가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국경 넘어 독일까지 놀러 가기도 하더라.
재미있는 사실은, 한국의 모든 사무실마다 한 대씩은 있는 정수기(혹은 냉온수기)가 여기에는 잘 없어서 뜨거운 물을 마시려면 커피포트로 끓여야 하는데, 한 번에 많은 양을 끓이다 보니 함께 나눠 먹는 일이 많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제일 많이 들리는 이야기는 'Anyone tea~?(차 마실 사람~?)'.
게다가 파티는 어찌나 또 자주 하는지, 크리스마스 파티는 워낙 기업마다 크게 열곤 하니 예외로 둔다 치더라도 임신한 직원의 베이비샤워(이 때는 각종 게임도 함께 한다)부터 '어글리 스웨터 데이'(다 같이 스웨터를 입고 와서 제일 못생긴 스웨터 뽑는 날), 심지어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까지(심지어 암스테르담에서 제일 큰 트리라며 자부심까지 가지라던). 이런 것만 봐도, 회식만 안 했다 뿐이지 오히려 더 단합 기회가 많고 돈독한 느낌이 있는 듯하다.
2) 통제가 안 된다.
- 분명 한국 회사에 비하면 출퇴근을 비롯한 많은 부분이 자유롭기는 하다. 출근 시간은 8시 반, 9시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고 30분 빨리 출근하면 빨리 퇴근할 수도 있다. 기차가 연착되면(인간적으로 너무 자주 연착되기는 하지만...) 그 즉시 '집에서 일 할게'라며 출근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여러모로 자유로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물론 그만큼 더 촘촘한 규칙이 있다. 예를 들어, 2주에 한 번씩 있는 마사지 시간에는 개인당 15분의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데, 마사지를 받을 경우 퇴근도 15분 늦게 해야 한다. 흡연자에게는 담배를 (가급적이면)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정도만 피울 것을 권한다. 담배를 많이 피울 경우, 자리를 비운 시간만큼 양심적으로 일을 더 하고 가기를 권하기도 하니까. 아무래도 기업 문화가 자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라'기 보다는, '이거랑 저거는 하지 말고 나머지는 다 괜찮아'라는 등 자유와 책임을 분명히 하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아직도 익혀야 할 것이 투성이라, 지금까지 느낀 것이 전부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3개월간 느낀 것은 어쩌면 말로만 듣던 '가족'이라는 느낌이 여기에 있을 수도 있겠다는 것. 그럼에도 나는 아직 아웃사이더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언어와 문화의 벽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언젠가는 나도 그 '가족'이라는 것의 일원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