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이'에 예민한 엄마
둘째 화온이는 참 순한 아이다.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 누나의 비위를 잘 맞추고, 이쁨 받을 짓을 하는지 보고 있으면 웃기고 짠할 때가 많다. 오매불망 누나 바라기였던 화온이가 요즘 누나 때문에 억울한 순간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엄마!!!!!!!!!!!!!!" 하고 자꾸 나를 부른다. 해결해 달라고. 그럴 때는 "화온아, 네가 누나에게 싫다고 말해야지!"라고 둘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지도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화온이가 스스로 문제 해결할 수 있도록 키우기 위해서이고, 엄마가 끼어들수록 남매 사이만 안 좋아질뿐더러 은재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고 나에게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럼 가운데에서 내가 퍽 난감해지니까 아이들이 알아서 좀 해결했으면 좋겠는 즉, 시달리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다.
오늘 저녁에 화온이를 재우는데, "엄마, 누나는 내가 착하다고 자꾸 뭘 시켜. 스스로 할 수 있는데도 물 갖다 달라, 가위 가져와라, 풀 갖다 달라.. 지금까지 한 열한 번이나 그랬을걸?" 라며 그동안 쌓인 불만들을 이야기했다. 내가 "와, 정말? 누나 너무 했다. 열한 번이나. 너 좀 많이 힘들었구나." 호응하니 6살 때는 가방을 들라고 시켰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1년 전 이야기까지 나와서 속으로 '화온이가 좋아서 한 게 아니었구나.' 놀랍기도 했다. 누나가 그렇게 시켰을 때 안 하고 싶었느냐 물으니 '안 하면 누나가 10,9,8,.... 하면서 화내니까...' 카운트다운을 하는 게 무섭다고 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온이가 하고 싶지 않을 때, 하고 싶지 않다고 정확히 의사표현을 하도록 지도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누나가 시키더라도 네가 안 하고 싶은 거라면, 네가 이야기해야 해. 엄마랑 한번 연습해 보자. 엄마가 누나인 것처럼 해볼게" 한 두어 번 정도 상황극을 연출했다. "화온아! 그런데 지금 말투는 너무 착한 것 같아. 좀 더 단호하게 말해봐." 누나 역할과 감독역할을 번갈아가면서.
형제가 있다는 것은 이래서 좋다. 살아가면서 자기표현이 얼마나 중요한데.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감각인데. 그걸 훈련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 가정이고, 안전한 상대가 형제니까. 자기표현이 결여되어 있어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또 '착함'이라는 선을 넘지 못해서 자신을 가둔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부디 화온이가 내일 아침 누나가 시키는 심부름에 해주고 싶으면 기쁘게 하고, 하기 싫으면 정확히 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억울하지 않게. 첫 술에 배부를리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