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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Sep 05. 2022

참호 일기

종가시나무

종가시나무

2011년, 2월 3일.


건축설계를 공부하는 중이다. 지금 만들고자 하는 참호에서 죽게 되면, 이대로 무덤이 되리라. 

꽤 멋진 생각이라는 흐뭇함이 죽음에 대한 불안을 가셔 준다. 


‘멋진 생각을 하라, 두려움은 하찮아진다.’


종가시나무에게선 어떤 힘이 느껴진다. 다른 나무의 영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역사자료를 찾아보니 종가시나무는 조선시대 수군이 만든 군함에 사용된 나무였다. 이 나무로 배의 특정부위를 마감하기도 했겠지만 무엇보다 나무 대포를 만들었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 나무는 그러니까 나무를 뚫는 나무인 셈이다. 


우리 민족의 수난기마다 수호의 선방에 섰던 종가시나무.... 이순신 장군께서 이 나무를 쓰다듬으며 모종의 어떤 전략무기를 연구하고 계신 상상을 해 본다. 종가시나무가 오만하고 탐욕스러운 왜군의 배를 종잇장처럼 구기는 상상을 하니 큰절을 올리고 싶은 마음마저 든다.  


신기한 점은 일본에도 종가시나무는 있다. 중국 남부 해안 쪽에도 자생하는 나무다. 그런데 제주도 종가시나무만 이렇게 거대하고 금속처럼 단단한 이유는 뭘까? 

일본에선 종가시나무를 어떻게 키우는지 찾아보니 담 대신 나지막하게 조르륵 일렬횡대로, 그야말로 무슨 서커스의 난쟁이처럼 키우고 있었다. 중국은 모르겠다. 검색이 안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종가시나무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도 제주에 와서 처음 알게 되었으니 이 같은 무례가 어디 있을까? 


잘려나간 밑동에서 새 가지들을 뻗어 또다시 500년을 사는 종가시 



반성의 마음으로 건축 일기 노트 표지에 종가시나무를 써넣는다. 

참호가 들어설 토지는 처음 볼 때 분명 숲이 우거진 곳이었다. 그런데 계약금을 걸어두고 토지를 구매하러 다시 방문했을 때 깜짝 놀랐다. 상상력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반듯하고 텅 비어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토지주는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집짓기 편하시도록 모양 좋게 정리해 놓았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무슨 감사인사라도 받고 싶은 표정을 짓는다. 참호 주변은 원래 곶자왈이었다. 마을이 형성되고 있어서 정리가 되긴 했어도 주변 곳곳에 수령이 6백 년 이상 된 종가시나무가 곳곳 확인되고 있다. 

왜 그런 참사를 일으켰냐 물어보니 종가시 같은 나무가 자라고 있으면 제주 사람은 땅을 사지 않는다는 말을 한다. 멀구슬나무도 베어내 버린 상태였다. 그 나무 열매에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인도에선 오히려 멀구슬나무를 집집마다 키우고 있다. 곤충을 쫓아내고 열매와 잎, 줄기 모두 약효가 뛰어나 일종의 가정 약국 역할을 하는 셈이다. 그런데 제주 사람들은 이 나무를 홀대한다. 


일부러 장비를 불러 친절을 베푼 그분에게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군데군데 처참하게 뽑혀나간 나무의 시체 조각이 나뒹굴고 있었다. 내가 이 땅을 사지 않았다면 그 나무들은 살 수 있었을까? 이를 악물고 반드시 내 마당에는 종가시나무를 심으리라 다짐한다. 


‘그런데.... 아.... 종가시나무를 어디서 구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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