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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Sep 04. 2022

참호 일기

태풍 힌남노에 큰절을 하다. 

2. 참호 일기..... 태풍 힌남노에 큰절을 하다


2022. 9. 4. 

드디어 염려하던 일이 벌어질 예정이다.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위성사진을 보니 태풍의 위용이 대단하다. 제주에 있는 동안 슈퍼태풍과 만나는 일은 없길 바랬는데, 2003년 수많은 기상기록을 갈아치우며 피해를 입혔던 태풍 매미보다도 덩치가 크다 한다.  


지금껏 제주에 살면서 가장 큰 공포를 느꼈던 태풍은 2012년 볼라벤이었다. 제주에서 처음 겪은 2011년의 태풍은 견딜 만했다. 그런데 다음 해 찾아온 태풍 볼라벤은 잊을 수가 없다. 그동안 육지에서 겪었던 태풍은 태풍이 아니었다. 2012년 거대한 태풍이 올라온다고 제주사람들이 난리를 칠 때 난 오히려 기대감이 컸다. 제주에서 겪는 태풍의 위용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서 볼라벤이 도착했을 때 외출을 했다. 이웃에 사는 제주분이 태풍이 도착하면 방 안에서 꼼짝 말라했는데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몸이 절로 움찍거렸다. 그래서 수영복으로 옷을 갈아입고 외출을 준비했다. 현관을 열었을 때 현관이 뜯어질 뻔한 것까지는 ‘오우!’ 대단하다는 정도의 느낌을 가졌다. 

대담해진 나는 비바람의 폭격을 겨우 견디며 천천히 걸음을 옮겨 갔다. 평소 다니던 산책길에 도착했는데 물론 주위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집안에서 모두 웅크리고 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수영복 차림으로 태풍과 맞서는 내 위용이 대단하다 생각됐다.  


하지만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이 계시다면 제주에서 절대 그런 미친 짓은 하지 마시라. 목숨이 경각에 달릴 때 뇌의 반응에 대한 연구 결과를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초능력이 생긴다고나 할까? 

갑자기 등골이 싸하더니 몰아치던 소용돌이 가운데서 날카로운 나뭇가지 하나가 화살처럼 날아오는 게 보였다. 정확히 그 장면은 지금 생각해도 슬로 모션이었다. 슬로 모션이니까 잘 피했겠지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몸은 얼음이 된다.


뭉뚝하게 부러진 나뭇가지의 끝이 화살촉이 되어 나의 눈으로 날아오고 있던 그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났다.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이거였다.

“젠장, 이제 막 참호를 완성했는데, 참호에서 죽지 못하고 이렇게 꼴사납게.... 태풍이 부는 날 나뭇가지에 꽂힌 채.... 길바닥에서 죽는구나!”


두려움의 원천에 창피함도 있다는 걸 오랜만에 느꼈다. 


하지만 나뭇가지는 다행히 내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때 화살이 귀 곁을 지나는 소리는 독사가 내뿜는 칼날 같았다. 지금도 내 귀 한쪽은 그때의 상처가 흉터로 남아 있다. 목숨을 구걸한 기분이었다. 갑자기 내 복장과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졌고 한심해 보였다. 그 뒤로 태풍이 오면 정말 조심한다. 


태풍이 만든 제주 해안의 음각



또 하나 일러둘 것은 태풍이 오면 해안이 더 위험하다는 점, 물론 제주에 정착할 생각이 있다면 더욱 해안 쪽으로는 터를 잡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볼라벤이 지나고 제주의 풍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하나만 얘기하겠다. 그때 내가 해안도로에 가서 본 것은 소형차만 한 바위가 어느 집 대문에 처박혀 있는 풍경이었다. 거대한 해일의 위력이었다. 그쪽 거주민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바로 귀가했지만 그 뒤로 태풍이 오면 늘 불안하다. 


이제는 태풍이 몰아칠 때면 늘 방 안에서 마음을 다스린다. 집 주위로 악마의 날갯짓이 느껴질 때 이 불안은 실재하는가 하며 나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태풍은 거부하기 힘든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힌남노에 비하면 볼라벤은 작은 아우 급이라 하지 않는가? 

조금 전, 대만 옆을 지나 덩치를 키우고 있는 힌남노의 위성사진을 보았다. 과연 태풍은 태어나고 죽는다는 표현을 써도 좋을 생명체다. 분명 태풍은 날카로운 이빨과 표독한 눈을 가진 괴수다.


그렇게 힌남노가 갈 곳을 모른 채 제자리에 맴돌며 덩치를 키우는 모습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 분노만 키우며 방황하던 시절도 떠올랐다.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모르지만 그 시절을 떠올리면 안타깝기만 하다. 다르게 보낼 수 있었는데....


이 생각에 이르자 태풍에 대한 나의 편견을 다시 보류하게 된다. 태풍의 포효는 어쩐지 슬프기도 하다. 자식 잃은 어미 같다고나 할까. 자식 잃은 어미들을 생각하며 함께 슬퍼하는 마음으로 이번 태풍을 맞아야겠다, 생각하니 마음이 오히려 편해진다. 


'그래, 힌남노가 오면 큰절을 올리고 조문을 하자.' 


얼마 전, 그림과 글씨를 직접 넣어 완성한 예쁜 초 한 자루를 준비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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