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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Sep 07. 2022

참호 일기

널 사랑하게 되어 다행이야

널 사랑하게 되어 다행이야

2011년 7월. 



(바닷가에서)

바다에 나왔다. 7월이지 않은가? 

소란 떨며 여행 가방 챙길 필요 없이, 완벽한 하늘을 확인하며 

아침밥을 먹던 차림으로 툭툭, 7분 정도 차를 타고 나오면 바다다.


바다에서 난 백석의 시를 읽는다. 

백석의 시를 읽다, 백석이 되어버린 나로 바다를 본다.

문득 너를 사랑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냐 


넉장거리하며 소리친다. 

나는 너에게 묻힐 것이므로, 

너의 가슴을 훔쳐보고는 비질을 하던 마음으로 

너의 가슴에 제대로 묻힐 것이므로.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일이냐, 멋진 일이냐

죽는다는 것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을 

혼자 알기엔 너무 아까운 마음으로 

바닷가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해가 저물었다. 참호에 갈 시간이다.


(참호에서)

이상한 일이다. 

나는 아주 잠시 고민을 했다. 

나의 고민은 <약을 끊을 것이냐, 약을 먹다가 피를 토하고 죽을 것이냐>였다. 

아무래도 피투성이 되어 발견되는 시체보다는, 도대체 어디가 아파서 죽었느냐 궁금해지는 모습으로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 나는 약을 끊는 것으로 결정했다. 

2010년 겨울, 제주에 내려올 때부터였다.    


2011년 참호를 올리면서도 걱정되는 일은 공사 마무리 전에 갑자기 죽는 일이었다.

이왕이면 마당에 종가시도 한 그루 심고, 버젓한 창문 앞에서 좋아하는 책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제주의 햇살을 받으며 죽고 싶었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나는 웃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참호 안팎으로 이렇게 어수선한 쓰레기 더미 위에서 쓰러진다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해야 할 일을 바로 앞에 남겨놓고 죽다니!


그런데 고민이다. 병원에 가야 하나?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아직까지 건강하다. 

뭐랄까, 두고 볼 일이지만 

하늘은 내가 무언가 하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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