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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Sep 24. 2022

참호 일기

2012. 7. 31.  다이돌핀을 만들자.

2012. 07. 31.

다이돌핀을 만들자.


최근 의학계에서 다이돌핀이라는 기적의 호르몬을 발견했다.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엔돌핀보다 무려 4,000배에 이르는 효능을 지녔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기적의 호르몬, 다이돌핀은 언제 우리 몸에서 생성될까?  


그것은 감동 받을 때, 그러니까 처음 듣는 기막힌 노래에서, 혹은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었을 때, 사랑에 빠졌을 때, 특히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호르몬 유전자가 활성화되면서 다이돌핀이 생성된다는 것이다.  내 몸에 다이돌핀이 생성될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본다.


다이돌핀이 생성될 만큼의 사랑은 1년 시한부로 생을 마감한 것 같다.  

그런데 제주는 끊임 없이 감동을 준다. 같은 예술품도 광화문에 놓여 있을 때보다는 제주의 숲과 바다에 놓여 있을 때 감동이 배가 된다. 같은 음악도 시청역 지하철보다는 제주의 중산간 도로를 달리며 들으면 뭔가 다른 음악이 된다.  도심 속 야경보다는 제주의 야경을 함께 바라보는 연인이 확실히 더 아름다워 보인다.  


무엇보다 제주는 우리들에게 깨달음의 환경을 제공하는데 최적의 장소다. 제주의 허파라는 곶자왈과 에메랄드빛 바다를 동시에 오가다보면, 눈과 손으로 알게 되는 세상 이상의 우주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요즘 우리 부부는 밤이 되면 옥상에 올라 자리를 펴고 누워 하늘을 본다. 돔으로 만든 천장에 수많은 별들과 구름과 비행기가 동화 속 풍경처럼 흐르고 숲에서는 수천 종의 풀벌레가 장엄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할 때,  옥상 주위를 둘러싼 숲에서 흩뿌려져 오는 칡꽃과 야생화의 달콤한 향기는 완벽한 종합예술이다.  


수없이 제주를 왔다지만 그런 걸 모르고 가사람들을 종종 본다. 제주산 흑돼지 바비큐와 막걸리밖에 기억에 안 남는다고도 하고, 바가지요금 때문에 뒷맛이 씁쓸한 여행이었다고 혹평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분들을 만나면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선글라스를 끼고 액셀레이터를 과히 밟아가며 드라이브를 즐기다, 저녁이 되면 기름진 고기로 배를 채우는 관광 스타일에서 무슨 깨달음이 있으며 무슨 감동이 있을까?

그런 건 제주에서 즐기지 말고 그냥 육지에서 즐겼음 한다.


체내에서 다이돌핀이 생성되는 풍경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지금도 다이돌핀이 부족해 암세포가 번져가고 있는 동지들에게 호소한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면 꼭 제주가 아니어도 좋다. 일상에서 늘 사랑하며 사는 건 불가능하므로 우리가 공략해야 할 타깃은 감동과 깨달음이 아닐까?


오늘 다시 생각해 본다.  제주에서 감동과 깨달음의 삶을 지속하려면 무얼 해야 하는지.....

조정래 작가는 그의 글쓰기를 '황홀한 글감옥'에 비유했다.  


황홀한 삶이야말로 감옥을 부수는 망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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