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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Sep 12. 2022

참호 일기

2020..  08. 11.  바보가 되다.

2020. 08. 11.


나는 <누워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구나...>

하며 아침을 맞는다.


누워 사색함은 참으로 추천할만한 일이다. 

나는 누워 사색하여 어떤 깨달음에 이르거나,  나의 상태를 마치 거적데기 들춰보듯 하다 찬찬히 무심하여질 때가 참으로 좋다. 


그러다 때로 옆에 놓인 책을 펼치면 반드시 그곳엔 훌륭한 문장이 있다. 

그러면 나는 기다란 풀숲에서 달달한 한 그루 아카시아를 발견한 소처럼 

그 문장을 잘근잘근 씹어보는 것이다. 


나는 달큼함에 취해 몸을 모로 눕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올려놓고 

팔 위에 머리를 괴고 이런 시도를 한다.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아니면 이미 일어났거나 진행 중일 수도 있는 모의 상황에 나를 던져버리는 거야.


---- 누군가 말이지. 나를 조금 겪어보고는 마치 나를 다 안다는 듯이 여기저기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함부로 하고 모함을 하여 그런 소문이 돌고 돌다 보니 점차 괴이해져서는 결국 내 귀에 들어왔단 말이지.  나는 기도 차고 억울하기도 하여 분한 마음에 팔을 걷어붙이고 그 괘씸한 놈을 수색했을 것이야. 멱살을 잡고 내다 꽂아야 하지 않겠어? 그런데 말이야.

어찌 된 일인지 여기 모로 누워있는 나는 한 숨 크게 내쉬고 씩 웃고 마는 것이 아니겠어? 

나는 그런 내가 너무도 기특해지는 거야. 나는 이게 행복이구나 하는 거야. ----


바보가 되다



아침에 이런 생각에 잠겼다고 하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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