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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Oct 01. 2022

물들다.

물들다


종이 위에 바다를 문지르자 거북손이 매달리기 시작했다.

물들인다는 행위는 그런 것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연습장 살 돈을 아끼기 위해 대학교 쓰레기 소각장에 가곤 했다.

그곳엔 버려진 논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그 논문들을 가지고 와 뒷장에 그림을 그리곤 했다.

어느 날 바닥에 누워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아버지가 나의 뒤통수를 때렸다.

너무 세게 때려서 이마를 방바닥에 찧었는데 뒤통수보다 이마가 더 아팠다.

아버지는 힘들게 먹여 키워놓았더니 만화나 그리고 있다면서 공부를 하라고 했다.

난 지금 생각해도 그 그림들이 만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뒤론 그림을 그리지 않는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다.

교과서를 펼쳐놓고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있으니 아버지는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은 아버지가 이렇게 나를 물들였기 때문이다.



가난한 아이들은 친구를 사귀기 힘들다. 특히 밥을 먹을 때는 외롭다.

운이 좋으면 마음씨 좋은 친구를 만나 그들의 맛있는 반찬을 얻어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운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학우들 앞에서 내 일기장을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현서의 일기가 아주 훌륭해요. 모두 현서에게 묻고 현서처럼 일기를 쓰도록! 물론 일기이기 때문에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어요.”


그 이후로 점심시간에 나는 외톨이로 먹지 않아도 되었다.

내 도시락 위에 아이들이 올려놓은 반찬들이 무지개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가 아이들과 나를 물들인 셈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 난 한 여학생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박진효’였다.

그런 감정은 난생처음 겪는 이상한 경험이었다.

나는 6학년 5반에 배정되었고, 짝을 맺어주기 위해 선생님은 아이들을 복도에 키순서로 서게 하셨다.

그때 한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내 눈은 단추 구멍처럼 작은데 그녀는 태양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날 이후 내 단추 구멍으로 들어온 빛은 나를 가득 물들이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녀는 내 짝이 되었다.

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를 감히 쳐다보지 못해서, 옆으로 돌아앉아야 할 정도로 눈부셨다.

이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난 지금도 사랑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이후로는 그런 감정에 휘둘린 적이 없었다.


물론 그녀를 좋아하는 남학생이 많았다.

동네 친구 ‘이여기’는 6학년 4반이었지만 그도 역시 그녀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 친구가 그녀를 좋아한다고 하며, 그녀의 짝인 나에게 그녀에 대한 정보를 요구했을 때, 난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척했다. 별로 친하지 않아서 아는 게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고 발로 애맨 땅만 후벼 파던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늘부터 알아 가면 되지. 진효가 어디에 사는지 오늘 한번 쫓아가 볼까?”


그랬더니 여기는 “그래도 될까? 나 너무 떨려.”라고 말하며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

솔직히 나도 그녀가 어떤 집에 사는지 너무 궁금했다.

뒤쫓다가 들키면 여기 핑계를 대면될 것이다 생각하니 용기가 났다.

여기는 소심했고, 나는 비겁했다.


그리고 하교 길에 그녀가 그녀의 친구들 대여섯 명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뒤쫓기 시작했다.

지금 그 순간을 떠올리면 그녀의 친구 중 한 명이 우리가 뒤쫓는 걸 눈치챘던 것 같긴 하다.

그녀의 친구가 걷다가 갑자기 뒤를 돌아보곤 했는데 그때마다 우리는 급한 대로 전봇대 뒤 같은 곳에 숨었다. 전봇대가 너무 좁아서 여기는 내 뒤에 숨었다.

우리가 그렇게 궁색하게 숨으면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그러다 결국은 진효와 그녀의 친구들이 뒤돌아서 이렇게 소리 질렀다.


“야, 현서! 너 어디 가니?”


친구 여기는 내 등 뒤에 숨어 오다 들켰다는 사실을 알자 냅따 도망치기 시작했다.

여기가 도망가자 화들짝 놀란 나도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망치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아! 18..... 모양 빠져.”


지금 생각하면 너무 안타깝다. 이왕 들킨 거, 당당하게 걸어가

“네가 사는 집에 간다. 어디 사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말했으면 지금 내 팔자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을 거다.


하지만 난 절친 여기의 소심함에 물들어 버렸다.

여기는 중국집 셋째 아들이었다.

여기 부모님은 식당에서 맞벌이하느라 반찬과 함께 아들딸의 밥을 한 솥 해놓고는, 종일 집을 비우셨다.

그래서 여기 집에 가면 그 맛있는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물론 여기의 형이 있는 날은 눈치를 봤지만 여기가 혼자 있는 날은 나를 부르곤 했다.

밥 같이 먹자고.....


난 그런 여기에게 물들었다. 여기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소심해졌다.


물들 때


어젯밤, 여기와 함께 놀던 또 다른 친구 경렬에게서 전화가 왔다.

늦은 밤이었는데 목소리가 안 좋았다. 경렬이 나에게 말했다.


“현서야, 이제 여기와 화해해. 그 녀석 지금 많이 안 좋아. 3년 전에 간암 3기여서 수술을 했다는데 오늘 재발했데. 우연히 그 녀석에게 놀러 갔다 들었어. 너에게 용서를 빌고 싶다고 울더라.....”


마음이 아팠다. 심장 여기 한 곳이 콕하고 조여 왔다.

여기와 연락을 끊고 지낸 사연은 여기 다 적지 못하지만 기억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로 인해 물들어 버린 나의 소심함이 그 친구와의 화해를 가로막고 있었다.

밤새 생각했다.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용서란 것은 정말 힘든 미덕이라 할 만하다.

용기를 내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이 용서인 것 같다.

누군가 “용기를 내어 용서하세요."라고 말한다면 코웃음을 칠 것 같다.

용서할 때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다. 용서할 때는 나를 버려야 한다.

내가 없어져야 한다. 용서할 때 필요한 것은 내가 사라지는 것이다.

나를 삭제하는 것이 쉬운가?


나는 어리석게도

그를 아직까지 용서하지 못하고 있다.

삭제했던 전화번호를 다시 받긴 했지만,

내가 먼저 전화할 순 없을 것 같다.

물론 그 친구가 용서를 빌며 먼저 연락을 해 온다면 그때 가서 볼 일이다.

그런데 소심한 그가 자신의 잘못을 빌며 연락할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후회하며 그렇게 죽겠지?


그런데 그렇게 그가 죽고 나면 나는 어떻게 될까?

그의 소심함을 알면서도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던 나를 훗날 용서할 수 있을까?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는가?

어린 시절, 친구 여기와 한 여자를 함께 사랑했던 추억 속의 나처럼 말이다.  


물들고 있는 참호


공교롭게도 오늘은 그동안 써오던 글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한라산에 참호를 파고>, <개 오줌에 깨다>, <물들다> 이렇게 세 편의 시리즈를 종결한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은 계획에 없던 글이다. 간암에 걸린 친구, 여기 때문에 쓰게 된 글이다.


이렇게 글을 쓰다 보니

나의 영혼에 뭔가 새로운 것이

물들어 있는 것을 본 것 같다.


나는 오늘도 물들어가는 나를 살피러

영혼의 계곡으로 놀러 간다.

그곳엔 나의 참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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