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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Oct 12. 2022

참호 일기

제주로 떠나는 날

2011년 9월 5일

나는 지금 이삿짐을 실은 차에서 이 글을 쓴다. 차는 완도를 출발하여 제주로 떠나는 배 위에 실려 있다.

기름 냄새와 시끄러운 엔진 소리로 가득 찬 이곳에서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사유로 가득 찬 지금의 속내를 혹시 놓칠까 두려워서다.

 

육지 집에 도착한 것은 어제였다. 오늘 준공을 앞둔 제주 집으로 드디어 이사를 간다.

아무튼 어제의 일이다. 현관문을 열자 아내가 서 있었다. 나는 1년 동안의 험난한 여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는 감격에 겨워 말없이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물었다.

“이제 짐을 싸야지. 내 짐은 어디 뒀어?”

“다른 이삿짐은 다 싸 뒀고, 당신 짐만 베란다에 뒀어. 제발 버릴 것은 좀 버리고 가자.”

“내 짐이 얼마나 된다고....”

하며 하던 말을 멈추게 된 것은 내 짐의 처참한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였다.


베란다는 볼트의 숙식처였는데 하필 내가 좋아하는 책과 그동안 원고가 볼트가 싸지른 오줌에 폭삭 젖어 있었다.

“뭐야? 여보! 이게 뭐야?”

“왜?”

“아니, 이걸 볼트랑 같이 두면 어떻게 해?”

“어? 저게 왜 저렇게 됐지? 오줌에 젖어버렸네?”

“아니..... 오줌에 젖어버린 정도가 아니라 이거 봐봐..... 곰팡이까지 앉았잖아.”

“어머, 미안해라. 이왕 이렇게 된 거 버리고 가자. 일부만 그렇고 나머지는 멀쩡하네. 그걸 다 가지고 가려고 했어?”

“다른 건 버려도 이건 버릴 수 없는 거라고!”

“어머, 그랬어? 난 몰랐지.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래?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좋은 날에 이럴 거야?”


이렇게 내 보물 2호는 또다시 내 곁을 떠났다.

내 곁을 떠난 보물 1호는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이었다.


20년 전, 아버지는 또 사기를 당했다. 집 지을 땅을 공동 구매한 직장동료에게 땅값 영수증을 받지 않아서 생긴 참사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커다란 포클레인이 집을 부수고 있었다. 도로가 집의 절반을 가로질러 계획에 묶여 있었는데 그 보상은 아버지 친구가 몽땅 받고 아버지는 거지처럼 쫓겨날 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살던 집을 비워야 했지만 나는 부수고 남은 집에 천막을 치고 항의시위를 했다. 지상권은 우리 거니까 정당한 권리였다. 절반으로 절단된 집 안쪽에서 매일 포클레인이 일으키는 소음과 먼지를 견디며 지내던 어느 날, 공사 관계자가 집을 비워달라고 했다. 이미 부친께서 계약서에 사인을 했으니 나가 달라는 거였다.


그날 마침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를 맞으며 난 내 짐을 리어카에 싣고 산동네 길을 넘어 새로 이사 간 집으로 혼자 이사를 했다. 집에 도착하는 3시간 동안 아무도 내 리어카를 밀어주지 않았다. 집에 도착하니 나만 빼고 온 식구가 삼겹살을 구워 먹고 있었고, 이미 형들과 아버지는 거하게 취해 있었다. 나는 말없이 세탁기가 놓인 내 방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아무도 내게 말을 거는 가족이 없었다. 그리고 이삿짐을 정리하다 보니 일기장이 사라진 걸 알게 되었다. 너무도 축축한 날이었다.


이번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다시 터진 어린 시절 상처로 분노가 솟구치고 있었지만 그걸 이해 못 하는 아내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신춘문예에 응모하려고 그동안 열심히 써왔던 원고들을 태울 때 개 오줌 때문이었을까? 지린 냄새가 났다.


그리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왜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가?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가? 소명을 이루지 못하고 제 명도 채우지 못한 채 사라지는 이 원고들의 운명을 보라. 도대체 왜 애쓰고 자빠졌는가? 아무도 읽지 못하고 사라질 글이라면 이 글들이 의미가 있을까?”


더글러스 애덤스가 쓴 최초의 코믹 SF 드라마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를 보면 인류는 슈퍼컴퓨터에게 질문을 하나 던진다. 그 질문은 “죽음을 면치 못함에도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할까?”였다. 그리고 슈퍼컴퓨터가 수백만 년 걸려 고민한 끝에 내놓은 해답은 42였다. 42라니? 내 인생처럼 허무한 대답이 아닌가?


작가의 메시지는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 얼마나 멍청한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찾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쇼펜하우어는 “책장을 넘기는데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 울며 이를 가는 소리,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끔찍한 소음이 들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철학이 아니다.”라고 했다.


<내 인생의 책장은 글이라고 할 만큼 의미 있다 말할 수 있는가?

그러니 나의 문장들이여, 오줌에 절여 한 줌 재가 되고 있다고 하여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어제까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배 위에 올라타는 순간, 역겨운 석유 냄새와 으르렁 거리는 엔진 소리를 들으며 깨달았다.

나는 분노해야 한다고!

젠장! 빌어먹을! 왜 내 인생은 이 따위냐고!

죽으러 가는 여정인데, 내 시체와 함께 태워줄 유일한 유산이란 말이다!

이렇게 소리쳐야 한다고.....


분노가 솟구친다.



2022년 10월 12일

11년 전, 일기를 훔쳐본다.

그때 아내에게 결국 분노를 표출했던가, 돌이켜보면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는 점이 지금도 씁쓸하다.

그런데 이렇게 10여 년이 흘러 돌아보면 참 재밌다는 생각도 든다.


저 일기를 쓸 때 난 내가 얼마 살지 못하고 죽을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니 분노의 이유가 충분하다 생각된다. 그런데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나에게 책임감도 없이 시한부 선고를 했던 의사는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나는 그 의사 앞에만 서면 속으로 이렇게 소리 지른다.

“야! 새끼야! 너 때문에 내가 직장에 사직서를 내고 외딴섬으로 이사를 갔다고!”


제주도에 집을 마련했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100%다.

그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소리치고 싶다.

“야! 이 무뇌들아! 놀러 온 니들 눈에나 좋아 보이지, 여기 사는 사람은 뭐 먹고살고 있는데!”     


제주도는 돈 많은 사람들에게나 천국이다. 자연을 즐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10년 넘게 살다 보면 그 하늘이 그 하늘이다. 더구나 지금 제주는 쓰레기와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난 떠나야 할 때가 되었다고 직감한다.


그나저나 제주 내려오기 전부터 해오던 책모임이 올해로 15년이 다 되어 간다. 내일도 우리 집에서 모임을 한다. 제주에 집을 마련한 의미를 나는 지금 책모임에서 찾고 있다.


그런데 내일 함께 얘기할 책을 읽다 보니 이런 말이 나온다.

“당신의 소명을 사랑하면 필시 세상도 사랑하게 된다.”

-류시화 저,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


와! 진짜 경이롭지 않은가?

제주로 이사 올 때부터 오늘까지 세상에 대한 혐오와 분노로 찌들어 있던 나에게 이런 문장이 성큼 다가오다니!


인생은 좋은지 나쁜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살아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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