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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Nov 10. 2022

참호 일기

비질의 정신

2014. 11. 20


거미줄과 부검지 쓸어 담는 정갈한 아침.

문득 비질을 멈추고 바람에 숟가락을 넣는다.

그리움 한 공기.


한번 가면 필연 다시 오지 않을 2014년도 이제 한 달 남았다.

나는 내 삶을 송두리째 이 아침처럼 정갈히 하고 싶어진다.

정갈하게 죽을 준비가 안되어 있는 그런 삶은 치욕이다.


난잡하게 먹어 대며 추레한 영혼 꾸역꾸역 몰아넣는 사람들의 행렬을 본다.

비질하고 싶다.


나를 비질하는 자로 만든 것은 제주의 바람과 새다.

시간이 멈추자 오달진 제주 박새의 부리가 가슴에 박혔다.


도저히 잡을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진 하루를

영원히 잡고 살 줄 알았던 사시랑이 가슴에 

시원한 바람이 오자 휘파람 소리가 났다. 


아! 추락할 줄 알면서도 웃는 자는

추락을 감당할 수 없는 자의 비명을 듣네 

비명을 지르는 자는 자기 비명으로 봉분을 세운다


꽃을 보며

그 꽃이 웃고 있다고 믿는 건 섬뜩한 일이다.  

우리가 삶을 바라볼 때도 그래야 한다.

삶은 가장 아름다울 때조차도 동시에 

가장 잔인하게 등 뒤에서 비수를 찌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비질의 정신이다. 

비질을 할 때는 검풀을 치우고 난 뒤 드러날 

맑은 길 하나만을 생각한다.

이 길에 함정은 없다. 


비질을 하면 어디로 가야할 지, 길은 하나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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