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6. 22. 좋은 도구
마음에 들지 않은 만년필이 있다. 선물로 받은 것인데 애매해지고 말았다.
그냥 버리기엔 아깝고, 쓰지 않고 두기엔 낭비 같고, 쓰고 있자니 불편하다.
이런 펜을 쓸모 있게, 그러나 빨리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어쩌다 보니 만년필을 선물 받았고 그런데 그 볼펜은 마침 내가 싫어할만한 특징을 고루 갖고 있다.
우선 무겁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재질도 크기도 무겁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잉크가 균일하게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잉크가 나오다 말다 한다. 이런 만년필은 글을 쓸 때 의식의 흐름을 방해한다.
이 펜은 오래되긴 했다. 아내가 신혼시절에 공항 면세점에서 선물로 사 온 만년필이다. 그녀는 내가 그 펜을 잘 쓰는 척하고 있으면 흐뭇해한다. 그러니 버릴 수도 없다.
접사를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팔아서 이제는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똥이 너무 많이 나오는 펜도 글러먹었다. 똥이 나오면 의식의 흐름이 진흙 구덩이에 빠진 결과를 낳는다.
그래서 똥을 쓱쓱 닦을 여분의 종이를 옆에 두고 써야 한다.
그렇게 한참 쓰다 의식이 끊어져 노트를 덮고 나면 똥을 처분했던 종이가 눈에 띈다.
어떤 종이는 소중한 기록을 담았기 때문에 소중한 대우를 받는데, 똥을 치운 이 종이는 뭔가 나를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못한다. 결국 버리고 나면 괴롭다.
그래. 난 버림을 받았다. 수도 없이 받아서 그 일들을 모두 쓰자면 그 글이 초라해지고 쪼잔해질 것 같아서, 도저히 쓸 수 없는 그런 일들을 겪었다.
그러니 볼펜이라도 좋은 걸 쓰고 싶다. 좋은 펜으로 좋은 종이 위에 글을 쓰고 있으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쓸모 있어 보인다. 비록 착각일지라도 그런 정신으로 지내면 쓸모 있는 일을 실제로 하게 된다. 쓸모 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쨌든 볼펜도 오래되면 버려야 한다. 시대에 맞게 이제는 노트북에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볼펜으로 쓸 때보다 의식의 흐름이 원활하진 않지만 어차피 펜으로 쓴 글을 세상에 공개하려면 다시 노트북에 옮겨야 한다.
하지만 이도 마땅치 않긴 마찬가지다. 난 지구 인류가 사용하는 전파, 전기제품이 모두 망가지는 재난이 올 거라 믿고 있다. 태양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던가, 지구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는 걸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 시절엔 노트에 적은 글만이 살아남겠지.
글을 쓴다는 건, 누구에게나 다른 의미와 고통의 과정이 있는 법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선 좋은 도구를 가져야 한다. 누가 도구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가?
멍청한 소리다. 거짓말이다. 정말 좋은 걸 쓰는 자들은 좋은 도구를 갖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건너 마을 산책길 옆엔 아흔을 넘기신 할머니 한 분이 홀로 살고 계신다. 이 분 집 마당 한 켠에는 30평 남짓 작은 밭이 있다. 산책할 때 보면 종종 흙 묻은 헌 바지를 입으시고 끝이 반쯤 닳은 호미로 잡초를 뽑으시거나 물을 주고 계시는 걸 보게 된다. 이 할망이 경작하시는 밭에 작물은 늘 싱그럽다. 얼마 전 기록적 가뭄에 상수도가 끊겼을 때 다른 밭은 모두 말라죽어갔지만 이 할망의 밭은 약간 시들었어도 푸름과 생기를 잃지 않았다.
기록적인 호우가 내린 뒤에도 이 분의 밭은 끄덕 없었다. 너무 신기해서 한 번은 물어보았다.
"할머니, 이번 가뭄에도 무탈하시네요?"
"무사? 이깟 쬐그만 밭 하나 가지고..... 걱정도 안 한다."
그렇다.
욕심이 없으면 걱정도, 창피 당할 일도 없는 법이다. 도구는 사실 핑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