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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영제 Jul 11. 2019

어제의 카레, 오늘의 여름  

일간 도시락

살아가면서 입맛이 없어지는 때가 딱 두 경우인데 첫 번째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두 번째는 더울 때이다. 올해는 그래도 생각보다 더운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여름은 여름. 거기 더해 스트레스도 만땅인 나날들. 생각나는 건 아이스 아메리카노 뿐이지만 돈도 벌어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하는데 커피 한 잔으로는 하루도 채 견디기가 힘들다. 그나마 맛이 강한 걸 만들어야 입에라도 넣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역시 이럴 땐 카레가 좋겠다.


불 앞에 오래 서 있어야 하는 거 빼고, 카레 만드는 건 하나도 힘들 게 없다. (늘 집밥 레시피에 등장하듯) 냉장고에 있는 채소들을 꺼내 썰어놓으면 재료 준비는 끝이다. 문제는 냉장고에 채소가 과연 몇 종류나 정상적인 상태로 있냐는 것. 냉장고를 열어보자. 시든 감자.. 흠.. 그래도 아직은 먹어도 될 것 같다. 양파도 세 개나 있네. 요즘 양파가 싸서 많이 사 뒀던 게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고기가 있다면 좋을텐데. 통조림 햄은 뭔가 카레랑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란 말이야. 아쉽지만 이 정도에서 만족할 수 밖에.


양파 껍질을 벗기고 채썬다. 많이 넣을수록 좋으니 세 개 모두 아낌없이. 냄비에 버터를 썰어넣고 양파를 볶는다. 처음에는 중불로 볶아 수분을 날려 보내고, 어느 정도 색깔이 바뀐다 싶으면 약불로 바꾼다. 양파 세 개를 썰어서 넣으면 꽉 차는 작은 냄비. 색이 변하고 숨이 죽으면서 양파의 양은 반의 반의 반으로 준다. 마치 마음 같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100 보내면 우리는 반의 반의 반도 돌려받을 수 없다. 대체로 우리의 마음은 괴롭고, 슬프고, 절망하며 카라멜라이징된 양파처럼 쪼그라든다. 대신 맛은 깊어진다. 무엇을 더해도 모나지 않게 어우러진다. 전해지지 못하고,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들도 더 깊어지고 더 어우러진다면 좋을텐데. 양파를 볶는데는 시간이 많이 걸려 이렇게 뜬금없고 맥락없는 생각들이 떠오른다. 어서 감자를 썰고 익혀야겠다.


감자는 깍뚝썰기 한다. 건더기로 씹을 것이 감자 뿐이니 조금 크게 썰어도 좋겠다. 모서리를 애써 깎아내지 않는다. 어차피 모서리들은 가루처럼 흩어질 것이다. 물과 카레와 섞이겠지. 나의 마음도 그렇게 된다면 좋을텐데. 나도, 누구도 괴롭게 만들지 말고 그냥 원래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면 좋을텐데. 카라멜라이징된 양파에 채소 삶은 물을 붓고 감자도 넣는다. 양파를 볶을 때, 옆 화구에 냄비를 놓고 잘 씻은 채소 뿌리와 껍질들을 우려냈다. 생수를 넣어도 상관없지만 뭐라도 나를 위해 정성을 더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고형카레를 넣고 잘 풀리도록 천천히 젓는다. 채 녹지 않은 고형카레를 씹는 건 보답받지 못하는 마음을 확인하는 것만큼 쓰니까.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주방에 가득찬다.  이제 중간불로 켜놓고 15분 정도 계속 저어주면 될 것이다. 더운 마음과 더운 생각들도 같이 저어본다. 살아간다는 건 왜 이렇게 고달플까. 양파와 감자가 진한 카레 색깔에 묻히듯, 진한 카레 냄새에 묻히듯 적당히 넘어가지고 적당히 견뎌내질 수는 없는걸까. 여름의 열기에 나무가 짙어지듯 힘든 무엇을 이겨내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는 있는걸까. 카레가 잘 만들어졌다. 불을 끄고 가스렌지에 올려둔다. 카레는 역시 어제의 카레지. 하루를 묵히고 내일 오전에 따뜻한 밥과 함께 먹을 것이다. 내일이 되어 어제의 카레를 먹으면, 내일의 나도 오늘의 걱정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어제의 카레, 오늘의 여름. 그리고 어제의 카레, 오늘의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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