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의 소소한 '취미'였던 책 읽기가 점점 '노동'이 되어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좋아했다.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자기계발서를 가까이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써먹을 만한 지식이 클 것 같은 CEO 추천도서, 경제경영 베스트셀러를 의무적으로 골랐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읽는 건, 예쁜 표지를 보고 집어 든 소설 한 권뿐.
3년 전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만났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소설을 편애하는 독서 성향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소설도 일과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해 준 고마운 존재.
1. 소설은 일의 의미를 돌아보게 한다.
김세희 작가 <가만한 나날>
2018년 수상작품집을 뒤적이다가"한 단어"에 사로잡혀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가만한 나날>의 주인공 경진은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그 인물에 빙의해 블로그에 '가짜' 상품 후기를 남기는 일을 한다. 그녀는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았다며 열심히 일한다. 그녀의 가짜 후기를 읽고 뿌리는 살균제를 구입한 누군가, 폐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
소설 속 나를 사로잡은 "한단어"는 "경진",내 이름이다. 뼈를 갈아 일하는 경진, 자기만족과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경진. 책을 읽던 당시 나는 막 과장으로 진급했지만,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과연 승진할 자격이 되는지,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했고, 회사에서 내 존재 이유를 찾고 싶었다.
잘 모르겠으면 경진씨한테 좀 물어보고 배우라고
내 이름이 들어간 문장에 움찔했다. 나도 이 말,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이 말이 듣고 싶었다. 하지만 제 3자 입장에서 바라보니, '내가 이 말을 듣기 위해 일하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결과물 생산에만 집착하는 소설 속 경진이 되고 싶지 않았다.
2. 소설은 일상 속 Pain point 발견의 기회다.
장류진 작가 <연수>
9년 차 회계사이자 30대 미혼 여성, 딱 내 또래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그녀와 나의 공통점은 지독한 운전 공포증. 우리 둘 다 내 힘으로 차를 사고 내 팬티만 빨면 되는(!) 독립적인 어른인데, 유독 운전대 앞에서 작아진다.
소설을 읽으며 작년에 연수를 받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낯선 사람과 두 시간 넘게 있는 건 너무 불편한데, 그래도 강사 옆에 있으니 큰 사고는 안 날 거야, 그런데 갑자기 누가 끼어들면 강사라고 별 수 있겠어? 남들은 저렇게 쉽게 차선을 바꾸는데 나는 왜 자꾸 땀이 나지...' 당시의 감정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었다.자율주행을 논하는시대에, 나처럼 운전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이 또 있다니!
이렇게 소설은 아무렇게나 지나친 일상을 되살려, 그 순간의 감정을 글로 치환해준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감정일수록 더욱 생생하게. 나처럼 일상 속 불편함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솔루션을 기획하는 신사업 담당자에게는, 더없이 좋은 '고객 니즈 파악'인 것이다.
내 이름이 등장하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으며, 일의 영향력을 생각하고 영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