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팟캐스트는 <영혼의 노숙자>이다. 진행자인 셀럽맷의 어머니는 무속인이다. 종종 무속인 어머니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아얘 샤머니즘이라는 카테고리로 새로운 에피소드가 올라왔다. 현대인이라면 샤머니즘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묶인 서양의 별자리부터 신점까지 뭐라도 하나 해봤을 법한 세상이 아닌가. 역시나 청취자들의 에피소드는 공감과 재미를 불러내기에 충분했다. 현대인의 한 명으로써 나도 내 앞길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여러 가지를 해봤었다. 아주 오래전 나도 속 답답한 마음에 별자리를 아주 잘 본다고 소문이 난 분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20대를 보내면서 너무 지쳐있었다. 주변 환경도 사람도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다. 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고 또 보냈다. 별자리로 내 사주를 봐주시던 분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얘기해 주셨다. 근데 그 얘기가 너무 맞아떨어져서 놀란 마음으로 끄덕이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내가 가장 고민하던 이야기를 하고 조언을 들었다. 사실 점을 보러 가서 조언을 듣는다고 하면 이상할까 싶지만 나에게 이렇게 될 거다라는 단언이 아니라 마치 상담 같았다. 그때 나에게 가장 한줄기 빛 같았던 말은 한마디였다.
조금만 더 참으면 돼요. 20대가 지나면 아주 조금씩 숨통이 트일 거예요.
그 말은 나에게 너무 큰 위로의 말이었다. 그래서 난 매번 그 말을 생각하면서 20대를 보냈고 30대가 되었었다. 정말로 나는 30대가 되면서 아주 조금씩 일이 잘 풀렸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고 그분의 말대로 나는 다른 나라에 있었다. 좀 더 덧붙이자면 당시 나는 개인적인 흥미로 스페인어를 배우고 있었는데 나에게 왜 그 언어를 배우는지 물어보셨었다. 사실 별 이유가 없었고 막연하게 그 나라에 가고 싶다고만 생각했었다. 그 말을 듣고 나에게 거기는 아니라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했던 두어 개의 나라 중 호주가 있었다. 그때는 외국으로 나가고자 하는 계획을 꿈꾸기에는 내 현실은 너무 각박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고 불현듯 그때가 생각났을 땐 너무 신기했다. 내가 별자리든 타로든 보러 가는 순간은 답답한 상황들이었다. 다행히도 나의 선택에 추진력을 준 덕분에 나는 흘러 흘러 지금에 있다. 다행히도 내 가 여러 순간에 만났던 나의 점괘를 점쳐주었던 분들은 마치 상담가 같기도 했다. 앞으로는 이렇게 잘 될 테니 걱정 말아라 지금까지도 잘해왔다 같은 말들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주었다. 밑도 끝도 없이 그래 어떻게든 될 테니 내 점괘를 믿어보자 라는 희망이 주는 응원은 참 컸다. 누군가는 그런 걸 믿냐고도 말하지만 믿는다는 마음보다는 믿고 해 보자 라는 마음으로 해왔던 것 같다. 사람이라는 게 믿을 구석 하나만 있어도 뭐든 헤쳐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오래전 별자리 사주를 봐주셨던 분이 그런 말씀을 했었다.
가끔 나이가 좀 있으신 분들이 와요. 그런데 많이들 우시더라고요. 지나간 시간들을 얘기해 드리면 자신이 포기했었던 하지 못했던 선택들에 대해서 후회가 돼서 우시거든요.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당신에게는 이런 길이 있었네요 하는 그 말에 속상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는 자주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 호주로 떠나기로 마음을 먹고도 고민하고 있을 때 타로를 봤었다. 그분은 나에게 더 나이가 들어서 겨우 다시 그 기회가 올지도 모르겠지만 다시는 이 기회가 안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결심을 할 수 있었다. 그 어떤 말보다 나에게 그 말은 가장 참담한 말이었다. 그렇게 후회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떠나고 나는 6년 차에 접어들었다. 신기하게도 어떻게든 일을 찾아서 생활비를 벌고 빚을 갚았다. 여윳돈은 없었어도 어떻게든 학교를 다니고 월세를 낼 수 있었다. 불 꺼진 사무실과 빌딩 화장실을 청소하고 식당에서 설거지 일을 했어도 그건 상관없었다. 일을 하고 돈을 벌어 나를 책임질 수 있으면 충분했다. 학비를 충당하고 빚을 갚았다. 방세가 싼 집을 찾아 살며 한방에서 3명이 같이 살았다. 그러다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찾고 매 학기를 마칠 수 있었다. 빚을 다 갚고서야 여윳돈을 모을 수 있었고 친구와 둘이 아파트에 있는 투룸을 얻어 계약서를 쓰고 비를 맞으면서 이사했었다. 내 방 없이 살았던 내가 처음으로 집을 계약해서 나와 살다니 여러 감정이 들었다. 더 이상 한집에서 여러 명이 모여 살지 않아도 되었다.
처음 호텔 일을 구하고 나서는 고용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회사 규정들이 나열된 계약서를 보면서 설레기도 했었다. 내가 나를 책임지고 살 수 있다는 게 너무나 감사했다. 매 달 내야 하는 돈을 계산하고 쫓기듯이 한 달을 살던 내가 있었다. 어쨌든 나는 내 점괘를 봐주었던 사람들의 말이 맞았다. 적어도 내 선택을 후회하는 일은 만들지 않았다. 샤머니즘이 뭐든 간에 적어도 나는 위로도 받았고 응원도 받았다. 마음 한편에 결국엔 잘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은 때론 생각보다 더 많은 힘이 되어준다. 누군가는 다 잘될 거라는 그 말을 어떻게 믿냐고 되물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 믿어보고 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거라 말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샤머니즘에 매몰되지는 말고 적당한 타협을 해보자는 것이다. <영혼의 노숙자 : 이상한 나라의 샤머니즘>에 나왔던 사연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