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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May 29. 2022

시아버지가 30년 만에 교회에 나오신 날

3대가 한 자리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 웃으세요.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교회 마당 한편에 준비된 포토존에서 폴라로이드 사진 한 장 찰칵. 온 가족이 한데 모인 기념을 사진으로 남겨 본다.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손주들까지 3대가 한 자리에 모였다. 그것도 한 교회에.


오늘이 얼마나 특별한 날이길래


참으로 특별한 날이다. 처음으로 3대가 교회에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된 날이자, 시어머니의 평생소원의 첫 단추가 끼워진 날, 바로 시아버지가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신 날이기 때문이다. 물론 교회에 나온다고 다 믿음이 생기고 바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첫걸음임에는 틀림없다. 시어머니께서는 무려 30년 이상 이 소원을 두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말이 30년이지 참으로 인고의 시간 이리라.


모태신앙은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함께 온 가족이 교회에 나가며 자라온 나에게, 주일을 지키는 것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상이자 삶이었다. 그 연장선으로 자연스럽게 크리스천  배우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배우자 기도를 아시나요?'를 참고하시길)


그러나 남편의 가정사는 좀 달랐다. 족히 믿음의 4대쯤 되어 보이는 인성과 신앙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지금의 남편.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뿌리 깊은 유교집안에서 핍박 아닌 핍박을 견뎌내며, 어머니는 홀로 교회에 나가며 남매를 기도로 키우셨다. 완고한 시아버지의 성격 때문에 젊은 시절에는 더욱 심적으로 힘드셨다고 한다. 그러다 나이가 드시면서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시는 듯 보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믿음의 3대쯤 되는 뿌리 깊은 기독교 집안의 교회 오빠를 고르고 골랐어야 하나 싶다. 하긴, 그런 사람이 날 좋아했을까...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


대를 잇는 축복의 유산이 '믿음'이 되길


교회 집사가 되고, 리더로 세워지자 자리에 따른 책임과 역할, 전문용어(?)로 '사명(calling)'에 관한 내용이 더욱 분명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우리 부부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위해 더욱 기도하게 되었다. 소중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지만, 가까운 가족 중에 유일하게 신앙이 없는 시아버지. 나도 안타까운 마음으로 계속 기도하고 있었으나 내 남편, 즉 아버지를 향한 아들의 기도는 남달랐으리라. 부모님에 대한 사랑, 깊은 안타까움 등을 안고 아들은 아버지에게 예수님을 전하고자 했고 아버지는 아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에 마음을 조금 여신 듯 보였다. 그리고 마침 있는 '전 교인 예배'(온 세대가 한자리에 모여 드리는 예배)에 오시게 되었다.



교회 한번 가는 것이 그리 대단한가요?


교회 한번 가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생각할 수 있다. 어릴 적 친구 따라 교회 한번 안나 가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니까. 그러나 이번 케이스는 조금 다르다. 평생을 교회에 대한 반감과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살아온 70이 넘은 사람이 이전과는 다른 부드러운 마음으로 아들과 손주들과 함께 교회에 온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가족 모임일 수도 있겠다. 장소만 교회일 뿐이지. 그러나 크리스천들은 잘 알고 있다. 이 작은 모임이 앞으로 굉장한 인생의 변화, 대를 잇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말이다.



모태 신앙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습니다


모태 신앙을 부러워했던 적이 있다. 뱃속에서부터 부모의 기도로 자라나면 얼마나 더 편하고 좋았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에서 말이다. 믿음의 4대 혹은 5대라는 친구들을 보면 '우와'라는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몇 대가 함께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는 모습은 부럽기 그지없었다. 물론 모태신앙이라고 해서 신앙생활을 다 잘하거나 하는 것도 아니더라. 오죽하면 우스갯소리로 모태신앙은 '못해 신앙'(?)이란다.


그러던 중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이되 축복으로 바꾸고 싶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크리스천이 된 남편도 같은 마음이었다. 우리부터 축복의 통로가 되자. 크리스천으로서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신앙을 유산으로 남겨주자 라는 마인드로 아이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보기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크리스천으로서의 우선순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삶의 목표이자 이유라면 무게감이 다르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시아버지가 교회에 나오신 일은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지만 그 변화를 지켜보는 증인으로서, 나의 삶도 더욱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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