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식사를 하던 D가 인터넷에 떠도는 '혼밥 레벨 테스트'를 쓱 내민다. 레벨 1인 '편의점에서 밥 먹기'부터 레벨 9인 '술집에서 술 마시기'까지 디테일한 묘사와 더불어 단계를 구분해놓은 센스에 웃음이 났다. 웃고는 있지만 동시에 나는 과연 몇 단계까지 혼밥이 가능할까라는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솔직히 혼자 고깃집에 가서 불판에 구워 먹는 고기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고기를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내공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나 할까.
혼밥이 뭐길래?
말 그대로 혼자 밥을 먹는다는 뜻의 ‘혼밥’, 10년 전에는 존재하지도 않던 단어가 이제는 당당히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다', ‘혼자 산다’, ‘약속 잡기 귀찮다’는 등의 다양한 이유로 ‘혼밥족’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게다가 1인 가구가 국내 전체 가구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혼밥'은 하나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실제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지난해 서울시민의 10명 중 7명꼴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혼밥’ 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한 한국외식산업경영연구원에 따르면 2022년 외식 트렌드는 ‘비싼 혼밥’이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바야흐로 혼밥도 진화하나 보다.
혼밥이 뭐가 어때서?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식사, 그리고 그것을 혼자 하는 혼밥. 도대체 왜 유독 우리 사회에서 이슈가 되었을까?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밥은 누군가 함께 먹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었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친교를 위한 목적이 있었음이 사실이다. 쉽게 말해 혼자 밥을 먹는다는 것이 조금은 어색한 문화였다.
이렇듯 남들의 시선과 체면에 유독 민감한 사회 분위기와 더불어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라는 일상적인 인사말만 보더라도 우리의 식사문화가 혼밥과는 다소 거리가 먼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담이지만, 흔히 인사치레로 하는 '밥 한번 먹자'라는 말에 진심으로 반응한 외국인들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는 우리가 얼마나 밥이라는 말에 진심인지 알게 되는 포인트이기도 했지만.
여기에 더하여, 혼밥족을 반기는 식당이 거의 없기도 했다. '혼자 오셨어요?', '주문은 2인부터 가능합니다' 등의 식당 종업원의 응대는 괜스레 1인 손님을 위축되게 하기도 했다. 물론 지금도 일부 고깃집이나 국물요리 식장은 1인분 주문을 받지 않는 곳도 있다만 굉장히 빠르게 외식문화가 바뀌고 있으니당당하게 먹자.
혼밥, 어디까지 해봤니?
개인적으로 혼밥을 꾸준히 해왔다. 내가 사회초년생일 때는 지금처럼 혼밥을 하기 위한 식당이 보편화되어있는 시대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가끔 부담되기도 했지만 그런 면에서 난 시대를 앞서갔던 것(?) 같다. 참고로 직장인 시절 거리낌 없는 혼밥을 포함한 나의 자유분방한 사고방식 때문에 동기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프리랜서'였다. 제멋대로 룰을 어기는 몰상식한 직원은 아니었으니 오해는 마시라.
한국사회에 깔려있는 은근한 체면문화와 시선 때문에 내가 혼밥을 할 때 선택했던 메뉴는 제한적이었다. 제대로 차려진 식사보다는 샌드위치와 커피, 혹은 간편한 패스트푸드점을 가곤 했다. 그곳들의 특성상 다른 사람을 덜 신경 쓰며 식사하고 쉴 수 있는 장점 때문이다.
싱글 직장인 시절,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던 나는 각종 스터디 모임이 많았는데 스터디원들끼리 '밥터디'라는 일종의 맛집 탐방 동호회를 만들어 함께 밥을 먹으러 다니기도 했다. 맛집은 가고 싶고, 혼자 가긴 괜히 민망해서 다 같이 가는 거다. 역시 같이 먹으니 맛은 있더라.
탄탄한(?) 혼밥 경력 덕분에, 지금도 외출 시 식사시간이 되면 혼밥을 하는 데는 크게 무리가 없다. 오히려 지난날보다 선택지가 많아진 식당과 메뉴에 감사하게 되더라. 요즘에는 1인석을 갖춘 식당도 점점 더 많아지고 아예 대놓고 '1인석 많아요'라고 써붙인 레스토랑까지 본 적이 있다. 그게 홍보 포인트라니 시대가 참 바뀌었구나 싶다. 배달 시장도 마찬가지다. 1인분 소포장 메뉴가 확대되거나, 배달업체 내 ‘1인분 배달 카테고리’ 역시 확산되고 있다.
혼밥 level 8 고깃집
아직도 혼밥이 어려운 당신께 혼밥의 매력을 알려드립니다
함께하는 식사의 즐거움도 크니 일부러 그 기회를 차단하라고 권하진 않겠다. 단, 당신이 아직도 요즘 트렌드인 혼밥에 대해 거부감이 있다면 그 매력을 조금씩 발견해보기 바라는 마음이다.
햄버거나 샌드위치로 시작하는 것도 꽤 괜찮은 접근이다. 특히 요즘 카페는 다양한 베이커리 옵션이 가득해서 식당보다 좀 더 여유롭게 커피와 함께 혼밥 타임을 누릴 수 있다. 또한 한 기사에 따르면, 최근 햄버거 시장이 커지는 데도 혼밥족이 일조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밝히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
당신의 혼밥에 대해 다른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타인의 시선과 혼자 먹기 어색한 분위기를 느낀다면 익숙해지면 되는 거다. 요새는 혼밥 하기 괜찮은 느긋한 분위기의 식당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니 다양한 메뉴에도 도전해 보시라.
혼밥 할 때의 영양적인 불균형, 그리고 혼자 먹는다고 너무 급하게 식사만 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혼밥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탄단지(탄수화물, 지방, 단백질)를 고루 갖춘, 불맛까지 제대로인 수제버거를 혼밥 메뉴로 픽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