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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Oct 07. 2023

책 보다 책표지를 더 깊이 관찰하게 된 이야기

엄마가 된 후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여유로운 느긋한 오후, 학교를 마친 아이와 집에서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특별히 무얼 하자 정해놓은 것 없이 각자 하고 싶은 일을 같은 공간에서 하는 것 생각보다 매력 있다. 

엄마, 이 캐릭터는 어때요?

내 옆에 앉아 곰실거리던 딸아이가 수줍게 내민 스케치북에는 어느새 알록달록 색감 고운 그림이 한가득이다. 




글로 세상을 배우던 엄마가 당황한 이유


어릴 때부터 그림보다는 활자와 글에 익숙했다. 심지어 그림일기를 쓸 때도 글을 먼저 완성시키고 그림은 그저 거들 뿐이란 느낌으로 대충 마무리했고 수업시간에 작성한 필기에는 그림이나 마인드맵보다는 촘촘한 글씨로 여백을 채웠다. 새로운 내용을 배울 때면 먼저 글로 된 문서를 읽거나 책을 통해서 접근하는 것이 나다운 일이었다. 반면에 그림은 미술 시간 이외에는,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는 그리는 법이 없었다. 관심도 취미도 없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다 이런 나와는 너무나 달라 이질감마저 드는, 미적 재능과 관심이 탁월한 딸아이를 발견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의 그림일기장 속 그림은 하나의 독립된 작품 같기도 했고 사물을 대하며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글로만 접하던 나와는 사뭇 달라서 순간순간 놀라고 있다. 딸의 노트를 보니 수업과는 관련 없는 온갖 그림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글씨체도 본인의 기분에 따라 매번 바꾸는 것 같아 신기할 따름이다. 딸아이의 재능도 탁월하지만, 이러한 성향이 나와 너무 달라 당황스럽다. 어쩌면 엄마를 이리 닮지 않은 모습이 딸에게 나올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달라도 너무 다른 예술적 기질을 가진 딸아이가 어느 순간 나를 재발견하는 계기가 될 줄은 몰랐다. 은연중에 내가 낳은 딸이니 당연히 나를 닮아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즐겨 읽을 줄 생각했다. 적어도 글을 좋아하는 시늉 정도는(?)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아니더라. 아이는 완전히 나와 성향이 다른 사람이었다. 애초에 나와 비슷할 거라는 생각이 오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끄럽지만 아이를 양육하며 내 잣대와 기준, 특별히 독서와 학습이라는 기준에 맞추어 아이를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르곤 했다. 원석처럼 깔려있는 기질과 재능을 못 알아본 못난 어미의 과오로 아이의 반짝이는 미적 감각은 제대로 발견되지 못했던 것 같다. 오히려 각 발달단계에 맞추어 읽어야 할 필수독서목록 깨부수기를 아이가 따라오지 못해서 마음이 조급해졌고, 아직 초등 저학년인 아이에게 남들 다하는 선행학습에 익숙지 않은 것이 못마땅했다. 나름대로 굳건했던 나의 육아철학은 학령기가 되자 바람 앞에 갈대같이 변해가고 있었다. 


사람은 재능이 각기 다르고, 그에 맞는 일이 있다.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지만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사실들을 숙지하고 있다 믿었는데 보이지 않는 나만의 강한 기준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비록 최근이지만 나와 아이의 다름을 인정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나와 아이를 그리고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이 덕분에 얻은 새로운 취미 그리고 취향


그림과 만들기 미술이란 영역은 내가 잘 모르고 관심도 없던 분야다. 그러나 나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예술적 기질을 가진 딸아이 덕분에 내가 점차 알아가고 싶은 분야이기도 하다. 더욱 구체적으로는 아이의 그림을 감상하며 함께 의미를 찾고 만들어가기 시작했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의 반짝이는 두 눈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그림자체보다는 아이가 그림을 통해 성장하며 반짝이는 모습을 보는 것에 엄마인 나 또한 기쁨을 느낀다. 아이 또한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엄마가 인정해 주고 함께하니 말투도, 표정도 더욱 자신감 있게 변해간다. 그림 한 장 더 그릴 시간에 문제집 하나 더 풀고 책을 읽었으면 좋으련만이란 삐죽한 생각이 무의식 중에 튀어나올 때도 있지만 이 아이는 지금 원석에서 보석이 되어가는 중이라 믿으며 마음껏 보듬어 주기로 했다. 


좀 더 실용적인 나의 변화도 있다. 아이를 통해 일러스트의 매력에 빠진 것이다. 요즘에는 대단한 웹툰도 많고 아이패드를 이용한 디지털 드로잉도 다양화되고 있다. 아직은 패드보다는 색연필이나 연필을 이용해 종이에 그림을 그리는 편이 훨씬 잦은 일이지만 도구의 문제일 뿐 아이의 미적 감각이나 수준은 날로 좋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다. 아이를 통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일러스트를 자주 보다 보니 관련 전시회에도 눈길이 갔고 종종 전시회나들이를 하기도 한다. 예전의 나였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그런 일들에 의미가 부여되니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기뻐지며 삶이 더욱 생기 있어짐은 물론이다. 


책을 볼 때도 표지 디자인과 일러스트의 의미까지 딸아이와 이야기하며 감삼을 나눠보는 것도 습관이 되었다. 책 표지는 그저 제목을 확인하는 용도로만 여겼던 내가 이제는 일러스트의 의미와 책의 내용을 생각해보며 의미를 추측하고 연관 짓기도 한다. 생각의 신선한 작업임과 동시에 또 다른 즐거움이다. 



딸아이처럼 그림을 그릴 거냐고요?


예술가 딸아이는 작가 엄마에게 종종 그림을 같이 그려보자고 제안을 하기도 한다. 정말 나도 그림을 배워볼까 고민도 했지만 그건 차차 결정하기로 했다. 그래도 이러한 대화 덕분에 굉장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나중에 엄마가 쓰는 책에 딸이 일러스트를 해주기로 계획하며 말이다.

상상만 해도 달콤한 그 생각이 때가 되면 자연스레 이루어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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