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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Aug 23. 2021

코로나 시대, 인간관계가 더 넓어져 버렸다

sns를 통한 느슨한 연대

코로나 잠잠해지면 밥 한번 먹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난 1년 이상 여러 번 해왔을 말. 코로나가 끝나면, 아니 지금보다 좀 잠잠해지면 얼굴을 보자는 불안한 약속. 곧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무뎌지고 심리적으로 지칠법한 요즘, 개인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 중 하나가 '인간관계' 일 것이다. 만해도 정기적으로 만나던 친구들을 못 보게 된 지 1년이 넘었다. 모임은 취소되고 관계는 소원해졌다. 곧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점차 꺾이며 나름의 적응 속에서 관계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sns 영역을 확장해가다


본래 sns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sns는 인생의 낭비야'까지는 아니지만, 나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내 정보를 내보이는 것 꺼려졌다. 쉽게 말해 그 세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블로그를 시작하게 되었고 점차 인스타그램, 유튜브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다. 이런 변화는 불과 1년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sns에 익숙하지 않았던 평범한 주부가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되다니. (이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풀겠다)



온라인 인맥과 단체 채팅방


매일 아침, '굿모닝'이란 인사말로 하루를 시작하는 단체 채팅방이 몇 개 있다. 대부분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들끼리 안부를 나누고 소식을 전한다. '생면부지'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잘 모르는 사람들 수십 명이 모여있는 곳. 기술의 발전으로, 이름과 전화번호 대신 닉네임과 관심사만 일치하면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 채널이 생기게 되었다. 각종 온라인 모임을 하면서 차곡차곡 쌓인 커뮤니티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멤버들이 사는 지역, 성별, 나이는 잘 모른다. 단지 공통의 관심사가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뭐 이런 희한한 커뮤니티가 있느냐 생각할 수도 있겠다. sns를 처음 시작할 때의 나처럼.


온라인 모임을 통해 각 영역에서 정보를 얻고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인 커뮤니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보교류에 적극적이며 서로의 성장을 열렬히 응원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자극이 되고 같이 성장하는 발판이 되는 것 같다.


sns를 통한 커뮤니티와 느슨한 연대


sns 커뮤니티가 주는 소속감, 그리고 느슨한 연대


직장에 다닐 때는 주로 회사 동료들과 교류를 했고(그것이 즐겁던 아니든 간에), 육아를 하면서는 같은 동네 엄마들과 어울렸다.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 대면 교류가 어려워지면서 이제 철저히 혼자 사는 법을 익혀야겠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반전이다. 소속감과 타인과의 연결을 갈망하는 인간의 본성과 급격히 발달한 기술로 인해 비대면으로도 sns 모임을 만들고 강의를 듣고 교류를 하고 있다. 이게 가능이나 하겠어 라고 의심하던 사람들도 이 거대한 흐름을 인정하는 모양새다. 같이 밥을 먹고 얼굴 보고 이야기하는 것도 분명히 중요한 만남이지만 이런 새로운 형태의 만남도 결코 나쁘지 않다. 단지 낯설었던 것 같다.


지방,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물론, 작가, 사업가, 유튜버 등등 사회에서 한꺼번에 만나기 힘든 부류의 사람들이 sns 관계망 속에서 교류하고 있다. 그리고 그 교류에 나의 에너지가 그리 많이 들지 않은 것도 정말 좋은 점이다. 무슨 말이냐고? '느슨한 연대(Weak Ties)'라고 들어봤는지? 촘촘하지 않은 관계, SNS로 가볍게 소통하면서 끈끈한 관계를 거부하는 새로운 개념이다.

서로 연결은 되었으나 아주 긴밀하거나 끈끈하지 않은 관계, 즉 ‘따로 또 같이’가 좀 더 원활한 관계를 말한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의 장점은 일부 취하되, 그런 연결이 주는 부담과 복잡함을 덜어 내겠다는 태도가 ‘느슨한 관계’를 만들어 냈다.  

(김용섭, 라이프 트렌드 2020 느슨한 연대 Weak Ties, 2019) 중에서


느슨한 연대의 반대말은 강한 연대, 즉 Strong Ties로 대표적인 예로 '가족'을 들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연대'라는 우리말 자체에 '끈끈해야만 할 것 같은' 정의가 포함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학연, 지연, 혈연, 군대식 직장문화 등의 연대만 생각해와서 더더욱.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우리'와 '공동체'가 개인보다 중요했던 유교사회에서는 '연대'라는 단어 자체에서 풍기는 강력한 뉘앙스가 있는 듯하다.


'느슨한 연대'는 시대적인 트렌드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래의 가족상과 주거환경까지 바꿔놓을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여기서는 너무 전문적인 이야기는 자제하기로 하겠다. 혹자는 필요에 의해서 연결되는 관계가 너무 이기주의적인 자세가 아니냐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관계를 보는 관점을 달리해서 더 긍정적인 면이 많다고 보인다. 끈끈하지 않아도 충분한 그런 연대. 원치 않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에 지쳐온 사람들에겐 환영할만하다.




온라인 인맥, 선택과 집중이 필요해


온라인이긴 하지만 이것도 인간관계 이기에, 관심을 갖고 신경을 써줘야 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고 때로는 피곤해질 수 있다. 그럴 땐 '선택과 집중'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 모든 그룹에서 내 존재감이 드러날 필요도 없고,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이유도 없다. 어느 순간 늘어나버린 단톡방과 읽지 않은 메시지 알람이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한 날, 과감히 결단했다. 나에게 가장 잘 맞고 오래가고 싶은 단체 채팅방에만 남아있기로. 어차피 나가는 사람 딱히 잡지도, 왜 나가느냐 묻지도 않더라. 세상 쿨한 느슨한 연대여!



그렇다면, 내가 추구하는 인간관계는?


앞에서 '느슨한 연대'의 장점에 대해 많이 언급했다. 그러나 모든 인간관계의 양상에는 장점만 있을 수는 없다. '느슨한 연대'가 주는 편안함과 동시에 나를 누구보다도 아껴주는 끈끈한 '강한 연대'도 필요한 때가 있으니까. 결국 이 '느슨한 연대'도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본성과 시대 사회적 트렌드를 반영한 결과이니 대세에 따라가겠다.


코로나 시대, 두 아이를 키우며 주로 집에서 살림하는 동안 끈끈한 연대에만 갇혀있던 내게는 분명 이 시대가 기회다. 이 시대가 가져온 sns를 통한 '느슨한 연대' 속에서 커뮤니티의 힘을 느끼며 충분히 그리고 할만하게 사람들과 소통하며 성장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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