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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Jan 19. 2022

100년 전 경성 그리고 신여성

낭만적일 수만은 없던 그 시대, 그 여성들

참으로 매력적인 단어, 신여성

"그것 참 예쁘다. 장가나 안 들었다면… 맵시가 동동 뜨는구나. 쳐다나 보아야 인사나 좀 해보지."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세간의 이목을 받아 화제가 되었던 '신여성'들에 대한 묘사 중 하나다.


신여성은 근대적 지식과 문물, 이념을 체현한 여성을 일컬으며 '모던걸'이란 단어와 혼용되어 쓰였다고 한다. 참고로 모던걸은 1920~1930년대 경성의 소비문화를 주도하고, 서구적 외양·취미·언어·의식 등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던 여성들로 정의되고 있다(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


우스갯소리로 모던걸을 '못된걸', 모던보이를 '못된 보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니, 당시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자, 손가락질을 던 이중적인 잣대가 있던 모양이다. 아무튼 이들은 한국 근현대의 획기적인 사회 변동 이슈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 보인다.


신여성 (출처: 한국민속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한 사람이 살아가기에 100년이라는 시간은 길어 보이지만, 역사적인 관점으로 볼 때는 짧은 시간이다. 지나온 시간이 얼아되지 않아서인지 20세기 초 근현대 사회에 대한 시각이나 평가는 오히려 조선시대 때보다 더 정리가 안되어 있는 느낌이.


더욱이 이 시기의 역사와 당시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는 영화나 책 등의 매체는 크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언뜻 보았던 영화나 사진을 통해서 쌓아온 신여성 혹은 모던걸의 이미지라 하면, 낭만적이고 세련된 선도적인 여성상이 떠오른다. 어쩌면 21세기형 신여성이 되고 싶은 욕망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00년 전 서울, 경성에서는


동양과 서양이 어우러진, 어수선하고도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100년 전 경성. 그리고  낭만과 예술, 그리고 사치와 허영의 이미지로 감싸진 신여성과 모던걸.


그들 자체만을 오롯이 떠올리기에 시대 상황은 암울함 그 자체였다. 일제의 탄압과 독립운동, 전통과 서구문물의 충돌, 여전히 가부장적인 사회. 멋지게 양장을 차려입고 단발머리에 뾰족구두를 신은 여성의 근대성만을 부각하기엔 시대가 너무나 절망적이었단 말이다.


나는 그로부터 100년 후 경성에 살고 있지만, 문득 그 시절의 여성들은 특히 신여성들의 삶은 어땠을까 궁금했다. 일제 치하에서의 저항과 독립운동이라는 역사적 대의 속에서도 개인의 삶은 이어져 나갔을 테니까. 특히 같은 여자로서 여성들의 삶, 무엇보다 신여성, 모던걸의 삶에 관심이 갔다. 때마침 TV에서 '나혜석'에 관한 프로그램(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을 방영했고 개인적으로 큰 울림이 있었다.



신여성, 나혜석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 나혜석.

비운의 서양화가이자 대표적인 신여성이라는 것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파격적인 인물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서양화가이자 여권운동, 사회운동가, 그리고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그녀.

나혜석은 ‘남녀평등’에 대한 개념조차 희미했던  당시 억압된 조선 여성의 권리에 주목했고, 가부장적 성차별에 대항하여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그 옛날 조선 여성 최초로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 기행을 했던 무지막지한(?)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인사는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시대를 너무도 앞서 나갔다 해야 할까. 그녀는 당시 스캔들의 핵심에 있는 세간의 관심거리였다. 나혜석의 불륜과 이혼 등의 개인사는 여성의 정조와 도덕관념을 중시하던 당시 사회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분위기였고 결국 그 일로 인해 가정도 개인도 엄청난 대가를 치르게 되고 말았으니.


대단한 점은 자신의 불륜 상대자에게 '정조 유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기도 하며 센세이션을 일으키키도 했다.


조선의 남성 심사는 이상하외다. 자기는 ‘정조(貞操) ’ 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겐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 합니다. 서양이나 동경 사람쯤 되더라도 내가 정조 관념이 없으면 남의 정조 관념 없는 것도 이해하고 존경합니다. 남에게 정조를 유린하는 이상 그 정조를 고수하도록 애호해 주는 것도 보통 인정이 아닌가. 자기가 직접 쾌락을 맛보면서 간접으로 말살시키고 저작시키는 일이 불소하외다.

- 삼천리, 이혼 고백서 중 1934


 일제강점기 여성 잡지들 (출처: 머니투데이)


복잡하고 말도 많은 인생이지만 '여자도 사람이다'를 외친 그녀는 한 인간으로서 여성의 권리를 깨달은 선각자이자 그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온 실천가였다.


나혜석을 포함한 신여성들은 급격한 사회변화 과정에서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에 대한 회의감을 품게 되었으며, 동시에 자유연애와 새로운 남녀관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신구 문화의 충돌과 과도기적 상황 속에서 제대로 된 가치관 정립은 쉽지 않았다. 게다가 일반 대중들은 이들의 이념보다 이들이 추구했던 자유연애, 전통적인 여성상과 성윤리 거부 등에 강한 반발감을 보였다. 그래서일까? 윤심덕, 김명순, 나혜석 등의 말로는 좋지 않았다.


지금도 남녀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보완되어야 할 사회적인 문제들이 곳곳에 있는데 100년 전엔 오죽했을까!
경성의 신여성들은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사회적 차별에 맞서 싸워야만 했다. 아니, 어쩌면 그들의 선구안과 실천 덕분에 지금 대한민국의 여권이 이만큼 성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경성의 신여성.  개인사와 시대상이 주는 비극과 아이러니가 공존하는 단어.

괜스레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표지사진: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포스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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