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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헬로쿠쌤 Mar 06. 2022

고상한 그녀, 드디어 학부형이 되다

고상한 학부모가 되고 싶어요

가슴이 콩닥콩닥, 잠이 잘 오지 않는 밤


드디어 그날이 왔다. 긴장과 설렘 그리고 가시지 않는 노파심.

나의 수능시험날이 이토록 긴장되었을까? 너무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이 함정이다.


첫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식 전날, 세상모르게 편안히 잠든 아이와는 달리 내 마음은 둥둥 떠다녔다. 마냥 품 안의 아기처럼만 느껴졌던 아이가 학생이 된다니 새삼스럽고 놀라운 일이다. 깊은 밤, 남편과 함께 아이의 학교 준비물에 이름표를 붙여가며 감회를 나누었다. 펜 한 자루 한 자루에 이름표를 붙이는 일이 귀찮고 수고스럽긴 했지만 뒤숭숭한 심정을 달래는 데에는 그만한 요법이 있을까 싶더라.



그 시절, 나의 초등학교 입학식


나의 어린 시절, 초등학교 입학식이 기억난다.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니기도 하지만, 그날의 기억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인상적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집에서 거리가 좀 있었던 학교까지 엄마 손을 잡고 가던 길, 아침을 든든히 먹었던 탓에 속이 별로 좋지 않았다. 평소에도 까다로운 식성 때문에 밥을 잘 먹지 않던 아이가 이른 아침부터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을 뚝딱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입학하는 아이를 위해 근사한 아침식사를 해주고 싶던 엄마의 마음을 모 르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결국 탈이 났고, 입학식 가던 길 내내 길거리에 토를 하고 말았다. 속은 안 좋고 배는 아프고, 신물은 올라와서 찜찜하고, 그걸 바라보는 엄마는 어쩔 줄 몰라하고, 학교라는 낯선 곳에서 입학식이란 걸 해보고. 이런 기억이 뒤죽박죽이어서 인지 그다지 유쾌한 추억은 아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학생수가 많아서 1학년이 16반 정도가 되었고 반별 학생 수도 50명이 훌쩍 넘었었다. 모르긴 몰라도 입학식이 거행된 학교 운동장은 그야말로 난장판을 방불케 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초등학교 생활은 시작되었고 1년 내내 오전반 오후반을 나눠하며 학교에 서서히 적응했었다.



이제 나도 학부형


내 한 몸만 잘 꾸미고 건사하면 되는 도도한 아가씨는 아이의 기저귀를 갈면서 본인의 식사를 하는 신공을 보여주는 아이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어느새 초등학생이 되었다. 사람을 낳아 기르는 일이 이렇게나 귀하고 어려운 일이었을까!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시간이 갈수록 가슴 깊이 다가오기도 한다.


육아도 고상하게 할 것 같아요


아이를 안고 있는 내게 지인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를 고상한 이미지로 봐준 것이야 고맙지만, 세상에 고상한 육아가 있었던가! 아이를 키우며 나란 인간의 숨겨졌던 괴상한(?) 모습과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바닥을 찍은 적도 여러 번이다. sns에 올리는 멀끔하고 정돈된 아이와 나의 이미지는 잘 꾸며진 찰나임을 밝혀 둔다. 물론 나도 일도 육아도 멋지게 하는 엄마들의 sns를 보며 그들을 동경을 한 적이 있지만 그들 또한 밝히지 못한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엄마들 모임에서는...


엄마들 모임이 없는 편이다. 코로나 시국이기도 하고 그런 모임엔 별로 취미가 없기도 하고 글 쓰며 일하는 내 시간이 소중해서이기도 하다. 아무튼 지인을 통해 들은 엄마들 모임의 주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엄마들은 유치원에 비해서 하교가 이른 아이들을 위해, 촘촘하고도 꼼꼼하게, 동선을 최소화하여 학원 스케줄을 짠다고 했다. 무려 작년 12월부터 스케줄을 짜고 선생님을 섭외하며 준비한 엄마들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나는 부족한 엄마인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각종 학원 정보와 좋다는 학습지 그리고 프로그램 정보들까지 모임에서 공유한다니 탐나는 모임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쿨하게 패스하기로 했다. 지금 내 아이를 관찰하여 세심하게 맞춰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아이보다 나에게 투자했던 나로서는,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서이기도 하고. 참, 아이의 사교육도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기로 했다. 물론 아이가 하다가 힘들다고 하면 그만둘 작정이다. (엄마의 사교육 이야기는, '아이 말고 엄마의 사교육비가 늘어버렸다'를 참고하시길)



It's going to be a BIG day!


입학식을 가는 아이의 의젓한 모습, 그리고 입학식 후 학교에서 나오는 아이의 밝은 얼굴을 보니 마음이 뭉클했다. (참고로 팬데믹 상황이라 학부모는 학교 안에 출입을 할 수 없었다)


학교는 즐겁고 재미난 곳이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깃들길 바란다. 더하여, 학부모가 된 나도 지나친 노파심보다는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잘 찾아 격려하는 진짜 고상한 학부모가 되길 바라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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