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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성 May 19. 2023

우리 사이 온도차

사람과의 관계를 보통 거리에 많이 빗대어 표현한다.

관련된 비유도 많고, 한 번쯤 들어봤을 글귀들도 많이 있다. 거리라는 것은 수치화할 수 있어서 들었을 때 가장 직관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역시 대상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으로 수보다 좋은 도구는 없는 것 같다.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린 ‘싸이월드’라는 혁명적인 플랫폼 역시 ‘1촌’이라는 개념으로 수많은 유저들의 공감을 얻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조상들은 훨씬 더 이전에 혈연관계를 몇 촌, 몇 촌이라는 숫자로 표현하여 직관적인 거리감을 나타냈다는 기가 막힌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옛날 다른 고유명사가 아닌 숫자의 개념으로 혈연관계를 표현했다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정의가 아닐 수가 없다.

    



평화로운 어느 날, TV에 나오는 리얼리티 연애예능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연애예능과는 이제 모든 면에서 차원이 달라졌다는 걸 새삼 느끼고 있었다. 예전처럼 웃음을 주기 위해 게임을 통해서 파트너를 맺고 바꾸며 에피소드를 이어가는 방식이 아니고, 실제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그대로 방송으로 옮겨와 이야기를 나누고 관계를 발전시키거나, 혹은 완전히 단절시키거나 하는 새로운 콘셉트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금세 그런 구성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 모양새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는 와중에, 이 TV속 인물들 사이를 단순한 거리감으로 표현하는 게 매우 쉽지 않겠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때 드는 생각이 바로 온도였다.

이들의 관계, 또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표현할 때 거리감을 뛰어넘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온도와 가깝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본 등장인물들 사이의 온도는 영상도 있고, 영하도 있었으며 이제 막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 단계도 있었고, 걷잡을 수 없이 냉각되는 시기도 보였다. 그리고 이는 곧 TV속 프로그램만이 아니라 나를 포함한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는 상황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노선은 0℃. 그때부터 얼기 시작하니까.

그렇다고 돌이키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차가워지는 온도를 느끼기는 해야 할 것이다.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누군가와의 온도가 0℃에 다다랐는가. 아님 어는점을 향해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봄이 오는듯한 마음으로 서서히 녹여보려는 노력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그와 혹은 그녀와 다시 따뜻해지고 싶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모든 관계사이에 존재하는 온도에 부담 갖지는 말자.

계절이 돌고 돌듯이, 녹았다 얼었다 하는 것도 그 이치로 보자면 크게 다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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