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삶 속, 괜찮지 않던 너에게 #1
자책과 함께했던 10년.
7시 알람 소리가 귀를 때려 실눈을 떠보려 찡그려본다. 새벽녘 아름다운 새소리와 햇살로 눈을 뜨면 좋겠지만, 알람 소리에 강아지가 일어나 밥을 먹고 응가를 하고도 남을 시간 동안 눈을 뜨지 못한다. 남편의 “나 다녀올께” 소리에 기어이 슬리퍼에 몸을 맡긴 채 방문을 열고 현관문 앞으로 나간다.
얼굴의 모든 주름으로 인사를 하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거울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 난 또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나지 못하지.’ 자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을 급히 깨우고, 밥을 차리고 아이 가방도 챙기고 스타킹을 신고 화장을 하고 귀걸이도 한다. 30분 남짓 하는 시간을 온갖 짜증과 ‘빨리빨리’라는 말을 수십 번 하며 나간다. 그 와중에 아이 가방을 미리 챙기지 않았다는 자책, 옷을 미리 정해두지 않고 잔 것에 대해 자책은 나의 일부이다. 엘리베이터를 잡지 않고 신발을 신고 있는 아이에게 엘리베이터를 왜 안 잡았냐고 하고, 핸드폰을 두고 나온 나에게 소리를 지른다. 아씨!!!
구두를 신은 채 방안으로 뛰어간다. 문 잠그는 소리가 들리기 전에 얼른 잡고 뛰쳐나가야 한다. 띠리링 하. 한숨 한 번 더 쉬고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있는 아이에게 짜증을 낸다. “사람 타고 있으면 그냥 보내야지! 아 죄송합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차로 달려간다. 시동 걸기 무섭게 1초 만에 핸들을 꺾는다. 믿을 수 없지만, 이 모든 순간에 아이와 함께 있다.
아이가 내리자마자 말 그대로 ‘던져주고’ 다시 달린다. 난 그렇게 달리다 빨간불이 걸리면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찍었다.
자책으로 시작한 하루는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눈을 뜨면서부터 자책하기 시작해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면서도 짜증 내는 내가 싫었고, 밥을 해주면서도 아 오늘은 고기를 먹였어야 했는데 혹은 야채를 해줬어야 했는데 하며 자책했고, 책을 읽어주지 않아서, 혹은 청소가 완벽하지 않아서 등등 모든 삶이 자책이었다. 매 순간 자책 병에 시달린 채, 10년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