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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부모, 오래된 자녀

맞닿은 두 손 덕분에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걸어간다.

by 미지의 세계

농촌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작물의 수확 시기나, 지역 축제의 흥망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농업인, 비농업인 관계없이 시골 사람들이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건 바로 '농번기'다. 날이 따스해지면 작물들이 본격적으로 자란다. 그걸 키우는 사람들도 바빠진다. 덩달아 마트 운영시간도 달라지고 공공 수영장은 잠시 쉬며 재정비를 한다. 농사 품앗이에 동원될 확률도 높아진다. 우리는 농사를 짓지 않지만 시부모님은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이 시기를 지나치기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이니 혈연을 이유만으로 노동력을 요구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더 편하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한 마디로 차라리 돈을 좀 들여서 일꾼을 고용하면 어떠냐는 거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직접 들어보니 모판 작업 같은 일들은 하루 종일 하는 게 아니라 짧은 시간 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필요해서 일꾼을 고용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끼리 품앗이란 개념도 생겼나 보다. 근처에 사는 가족이 도와주면 남한테 아쉬운 소리를 덜 해도 되니 여러모로 편할 것이다.


아무튼 어느 날 남편이 말했다.

"나 내일 부모님 도우러 가 봐야 해. 모판 만든대"

"음, 그렇구나. 나는 몰랐네? 부모님이 나한텐 말씀 없으셨나 봐?"


물론 평소 우리 시부모님은 며느리에게 이것저것 요구하는 분이 아니셔서 크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말이 나와 말이지만, 시부모님들은 단순히 무슨 요구를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명절이라고 챙겨서 찾아올 필요 없다.', '부담 느끼면서 뭘 하려고 할 필요 없다. 우린 너희 존재 자체가 큰 행복이다.'라고 하는 분들이다. 정말 이상적인 시부모님 그 자체다. 매번 감사드린다. 그런데 남편이 그러는 것이다.


"아버지가 너도 오라고 했는데 내가 말렸어. 며느리는 남남이나 다름없잖아. 이런 가족 일에 부르면 안 되지."


마음이 복잡했다. 일단 평소에 아무 요구도 없으신 분들이 망설임 없이 날 부르려고 하셨다는 게 놀라웠다. 그리고 남편의 말, "며느리는 남남이나 다름없어서 이런 가족 일에 부르면 안 된다"는 건 또 뭔가. 결혼했으면 가족인데 왜 그렇게 선을 또렷이 긋는 걸까. '가족'이란 울타리가 설령 나를 고된 농사일에 끌고 갈 근거가 된다고 해도 서운한 일이다. 고된 일에서 제외된 건 편했지만, 동시에 가족에서도 빠진 기분도 들었다.


"그건 아니지... 무조건 일하기 싫었던 것도 아니고. 나한테 일정이 되는지 물어보겠다고 하고 같이 상의했으면 더 좋았겠다." 나의 볼멘소리에 남편도 좀 당황한 듯 보였다. "일 안 하면 좋은 거잖아. " 그리고는 잠시 후에 덧붙인다. "하긴, 우리가 맨날 부모님이 생산한 농산물을 얻어먹고 있으니까 너도 뭔가 보답하는 게 좋겠다. 다음엔 주말에 일을 잡아달라고 해서 같이 가자."


주말엔 아이들을 하루종일 봐야 하기 때문에 우리 둘 다 별 일정을 잡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노동하는 날을 주말로 잡자는 얘기 같았다. 그런데 보답? 나는 이미 내 방식대로 시부모님께 감사함을 표현하고 있는데... 마치 내가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더 대화가 이어지면 싸움이 될 것 같아 일단 지나갔다. 고민 끝에 일단 시부모님의 마음을 들어보기로 했다. 마침 주말에 시어머니의 생신을 기념해 모두 모이기로 한 참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식사 시간. 나는 조심스럽게 이야길 꺼냈다. "아버님, 어머님. 이번에 모판 만드시느라 힘드셨죠? ㅇㅇ아빠 (배우자)도 집에 와서 바로 뻗더라고요. 제가 참여하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어요. 다음엔 주말에 같이 가자고 ㅇㅇ아빠가 그러네요. 불러주시면 저도 애들 챙기면서 새참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시부모님은 좀 당황한 듯 보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이 덧붙였다. 우리 가족이 부모님 덕분에 싱싱하고 맛있는 농산물을 공급받고 있으니, 주말에 다 함께 와서 돕는 게 맞다고.


"농사일이라는 게... 평일, 주말 가려가며 하는 게 아니다. 그걸 맞출 수도 없고. 허허허."


그 뒤로 아버님과 어머님은 우리를 모내기에 부르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남편도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내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여전히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일단 남편은 평안해 보였다.


"그런데, 왜 아버님은 날 부르려고 하셨을까? 원래 그런 말씀 전혀 안 하시잖아."


배우자가 말했다.

"아마 별생각 없이 그런 걸걸. 그냥 사람이 많이 필요하고, 너나 나나 가까이 살면서 휴직 중이라 집에 있으니까."


이 이야길 친한 친구에게 했더니 친구도 말한다.

"시부모님이 잘 마무리해 주셨네. 너희 부부 안 싸우게 말이야."


그제야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말, 시부모님은 우리 부부가 감정을 다치지 않도록 마지막 마무리를 해주신 셈이었다.


새로운 부모가 있다. 강요보다는 배려를 택하는. 오래된 자녀도 있다. 효도하고 싶지만 거리도 존중받고 싶은.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부모와 자녀는 나란히 평행선을 걷는다.

그러다 문득 서로가 손을 뻗는다. 넘어질까 봐, 길을 잃을까 봐, 아니면 그냥 보고 싶어서.


마음이 조금 달라도 맞닿은 두 손 덕분에 부모와 자녀는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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