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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아니 손주가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by 미지의 세계

수영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고 있으면 개운하고 홀가분하다. 몸에 정말 걸친 것이 하나도 없고, 적당한 운동, 적절한 샤워 덕분에 몸도 가볍다. 탈의실에서 사람들이 유독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이를테면 이런 이야기.


"아이고, 나는 집에 가서 이불 빨래를 싹 해야 해서 죽겠네. 이번 여름휴가 때 애들이 온다고 그래서."

70대 즈음되어 보이는 여성 셋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귀를 사로잡은 건 그다음이었다.


"어휴, 몇 명이나?"

"6명~"

"아니, 염치도 없네. 6명이나 온대?"


염치도 없다,는 말에 흠칫 놀라 돌아봤다. 대화를 이어가던 사람들은 별 이상한 점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한동안 그 여성들은 멀리 사는 가족들, 주로 자식들과 손주들이 찾아오면 얼마나 성가신지에 대해 열띤 대화를 이어갔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물론 진짜로 할머니 집에 찾아오는 손주들을 '염치없다'거나, '싫다'라고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화에서 느껴지는 전반적인 분위기는 애정이었다. 그리고 "아이고~"로 시작한 첫 번째 여성의 말은, 얼핏 푸념처럼 들리는 자랑 같기도 했다. 기분 좋은 일이 있지만 대놓고 자랑하기에는 뭔가 소박한 일일 때, 아니면 듣는 사람이 욕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방어선이 필요할 때 그런 말투를 종종 사용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아, (요즘 가게가 잘 되어서) 가게에 일찍 나가서 청소나 해야겠네. 아이고, 피곤해.'라든지.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고단함을 토로하는 것도 진짜였다는 것이다. 손주가 오면 아무 말 없이 가장 깨끗한 이부자리를 펴 주고, 맛있는 음식을 계속 내 오시던, 나의 할머니들이 생각났다. 우리 할머니들도 저렇게 생각하셨으려나.



생각이 많아지긴 했지만 이렇게 솔직한 할머니들의 대화를 처음 들은 건 아니었다. 언젠가 가족들과 다 같이 동네 분식집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그곳은 70대 즈음되어 보이는 여성이 운영하는 작은 가게로 지역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잠시 후 어떤 여성 두 명이 가게로 들어왔다. 아마 자매인 듯했고, 어릴 적부터 이 분식집을 다닌 단골 같았다. 타지에 일 하러 갔다가 오랜만에 방문한 것인지 그 단골들과 대화하는 사장님의 목소리는 밝고 들떠 보였다.


"어머님도 좋아했겠네~ 맛있는 거 많이 먹었어?"


자매 중 하나가 "엄마가 나가서 밥 먹고 오래서 온 거예요."하고 웃자 사장님이 말했다.

"하긴~ 나도 우리 손주들이 맨날 오면 '할머니, 맛있는 거 해줘!' 그래. 근데 내가 그랬어. 나가서 사 먹어! 할머니도 하기 싫어! 하하하"


물론 사장님이야 맨날 음식을 하는 게 일이니까 힘드셨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손주의 요청을 쿨하게 거절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거의 처음 보는 거여서 인상적으로 남았다. 그때도 우리 할머니들을 떠올렸고 말이다.



할머니들은 정말 손주들이 오는 게 불편한 걸까? 현재 나랑 가장 친한 '할머니', 즉 엄마한테 물어보기로 했다. 엄마와 통화하며 그동안 내가 들은 할머니들의 대화를 요약해 들려드렸다. 엄마는 무척 즐거워했다. "당연히 부담스럽고 불편하지~ 근데 그게 또 마냥 싫은 건 아니야. 너무 예쁜데 왜 싫겠어? 얼굴 보면 반갑고, 좋고, 귀엽고. 준비하는 건 힘들고 그런 거지." 이런 반응은 몇몇 사람들의 푸념이 아니다. 이미 SNS나 육아 커뮤니티에서도 조부모가 아이들을 봐주는 일명 '황혼 육아의 고됨'에 대한 여러 농담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동안 우리 할머니들은 이런 이야길 안 했을까. 가족일지라도 손님은 손님인데 말이다.


나름대로 추측해 본 이유는 이렇다. 일단 시대가 바뀌었다. 예전엔, 우리 부모님 세대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가족들을 위해 빨래를 하고 밥을 짓는 일이 여성들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집안일을 전업으로 삼고 있는 여성들도 많았다. 그래서 집안일에 힘들다거나 하기 싫다는 말을 다는 건, 공감보단 비판을 듣기 좋았을 것이다. 부모 세대는 헌신하고 자녀 세대는 그 수혜를 받는 흐름도 익숙한 일이었다. 부모의 헌신을 딛고 더 넓은 세상에 나간 자식들이 집에 다시 돌아오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기껏해야 명절 때 어쩌다 한번. 가끔 보는 소중한 내 자식과 그 자식들을 살뜰히 보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여성들은, 설령 전업 주부라 할지라도, 집안일의 고됨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감도 받을 수 있다. 의지만 있다면 자녀와 손주들도 자주 볼 수 있다. "아휴, 고되 죽겠네!"하고 투정 부릴 수 있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런 투정을 부려도 될 정도로 사회가 바뀌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 보면 어머니 상도 예전과 지금은 조금 달라졌구나 싶다. 예전에는 어머니 하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는 모습이었고 그게 당연했는데 요즘은 '자유부인', '자유 남편' 이런 말을 써가면서 양육에서 해방된 즐거움을 표현한다. '육아가 힘들면 조금은 쉬어가도 돼요. 미디어를 조금 노출시키면 어때요. 집이 조금 엉망이면 어때요.' 하며 위로를 건네는 콘텐츠도 많다. 나 역시도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지 않는 주말이 너무 괴로워!' 하며 푸념을 하다가, 저녁엔 잠든 아이들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뽀뽀한다. 아마 거의 평생을 천생 엄마와 불량 엄마 사이에서 흔들릴 거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없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이 단어 말고는 생각나는 단어가 없는데, 사랑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결국은 사랑하는 것 중에서도 좋아하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해야만 이 모순적인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는 사랑하지만 그를 케어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헌신은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렇게 싫어하는 일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조금 불편하고 고생하면 사랑하는 아이들이 조금 더 쾌적하고 편안할 수 있다. 즉, 내키지 않는 것을 해야만 사랑하는 것이 행복할 수 있다. 그래서 불편함과 고생을 감수한다. 결국 사랑의 완성은 사랑하지 않는 것을 기꺼이 해내는 마음인가 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 내일부터 아이들의 어린이집 방학이 시작된다. 이번 여름 방학은 주말을 합쳐 약 8일. 그래도 방학인데 집에만 있는 건 너무 심심할 것 같아서 서울 친정집과 강진 시댁을 오가기로 했다. 해서 우리 아이들은, 당연히 부모인 우리의 양육을 주로 받으면서, 각자 서울에 사는 외할머니와 강진에 사는 친할머니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최근의 경험을 통해 두 할머니의 중얼거림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아휴, 애들이 방학이라서 놀러 온다네.'

'뭘 해서 먹이면 좋으려나.'

'이불 한 번 빨아둬야겠다.'


이번 여름엔 우리 할머니들에게도 '힘들지 않게' 다녀와야겠다. 사랑한다고 자주 표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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