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도착하는 사랑의 한 조각
특히 아이들과 싸울 때 인내심은 꼭 한 박자 늦게 발휘된다.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고 혼낼 일도 아닌데 당시에는 확신에 차서 아이들에게 소리치게 되는 것이다. 그날도 그랬다. 그 한 박자의 늦은 인내가 결국 작은 폭발을 낳았다. 저녁에 첫째 아이가 도와달라고 불렀다. 자기 장난감 차에 있는 나사를 장난감 드라이버로 분해하려고 하는데 안된다고 했다.
솔직히 당시 아이의 요구는 너무 귀찮게 느껴졌다. 이미 하루 종일 아이들을 홀로 돌보느라 기력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보호자 한 명이서 아이 둘을 돌보고, 나머지 한 명은 쉬자'고 매번 주장하는 남편이 지난주에 자진해서 아이들을 독점했었다. 내가 시킨 건 아니지만 막상 쉬니 좋았고 배우자에게도 괜히 미안했다. 그래서 '다음 주말 중 하루는 내가 아이들을 온전히 보겠노라'고, '당신은 쉬라'고 해 버렸다....
홀로 아이들을 보며 과거의 섣부른 이타심을 계속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일, 힘이 있으나 없으나 아이들 보호자로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건조대에 널린 빨래를 걷어 개고 아이들의 밥도 차려야 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만약 아이의 차를 함께 분해한다면 이후 업무가 더 늘어날 것이 뻔했다. 아직 아이는 다 풀어헤친 나사를 다시 조립할 능력도 안 됐다. 그러니까 나사를 풀고, 그의 놀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 다음, 그가 자리를 떴을 때 다시 차를 조립하고 정리하는 일을 해달라고 지금 아이가 요구하는 셈이었다. 추가 업무를 하기엔 여유가 도무지 없는 나에게 말이다.
아이의 태도가 공손하지 못한 것도 부탁을 듣기 싫은 이유 중 하나였다. 아이는 이미 스스로 여러 차례 나사를 풀려고 시도했고 잘 안 됐기 때문에 조금 신경질이 난 상태였다. 씩씩거리는 뒷모습에서 연기가 나는 것 같았다.
"엄마, 엄마! 도와주라고요! 이거 풀어주라고요!"
"안 돼. 그건 진짜 드라이버로 해야 하는데 엄마는 못 해. 할 일도 아직 있고."
격해진 감정을 부딪히고 싶지 않아서 차라리 무능해지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아이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지금 풀어줘요! 이거 나사!"
"아, 못 한다니까!!!!!"
결국 언성이 높아지자 아이가 울먹거리며 말했다.
"소리 지르지 마! 어른이 아이를 도와줘야지!"
뜨끔. 맞는 말 두 문장이 연달아 들리자 내심 놀랐고 당황스러웠다. '만 3살짜리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하지?' 하지만 지금은 부딪히는 중이었기에 감탄하거나 놀란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퍼벅! 뭔가 둔탁한 것이 바닥에 부딪혔다. 아이가 던진 장난감 드라이버였다.
"으아앙!" 하필 그 드라이버는 땅에서 튕겨나와 옆에서 눈치 보고 서 있던 둘째를 맞췄다. 둘째 아이는 울고, 나는 첫째를 번쩍 안아 들었다. 무슨 상황이든 훈육은 해야 했다. 그래도 최대한 아이가 억울하지 않게, 꼭 필요한 말만 해주겠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장난감을 던지면 안 된다는 말만 해야지. 아무리 나랑 방금까지 다퉜다고 해도 아이가 정말 잘못한 일만 말해줘야지.'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여전히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던 아이는 대성통곡 울기 시작했다. 아이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데 그때 현관문 소리가 들리며 외출했던 남편이 돌아왔다.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었다. 아이와 상황을 마무리하고 나는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는 너무나 흔쾌히 첫째 아이에게 말했다. "아빠가 해줄게. 잠깐만~"
이렇게 쉽게 평화가 찾아올 수 있던가. 아이들을 다정하게 달래고 돌보는 남편이 고마웠다. 하지만 동시에 서운하기도 했다. 어쩐지 나의 '사랑'만 시험대에 오른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두 명이면 이렇게 좀 더 여유를 두고 아이와 부모가 모두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런데 왜 굳이 한 명이 아이들을 다 돌봐서 이 지경까지 만드는가 말이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자애롭고 너그러운 엄마이고 싶었기에 그러지 못한 방금 전 상황이 스스로도 힘들었다. 나중에 이런 이야기를 하며 '홀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하지 않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나를 나무라는 투로 말했다.
"아이들이랑 감정적으로 부딪힐 일이 뭐가 있어? 우린 어른인데. 그리고 말이 나와 말이지만 너는... 가끔 애들한테 진심으로 짜증 내더라. 뭐 그런 사람도 있을 수는 있지만 난 그게 정말 이상하고 솔직히 보기 싫어."
객관적인 태도의 성찰과 비판은 스스로에게 맡겨도 충분할 텐데, 굳이 그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며 자책하는 나를 한번 더 책망했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평소에도 감정 기복이 크지 않은 남편은 아이들에게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어렵지 않아 보였다. 불처럼 사랑하고, 또 힘들거나 기분이 좋지 않을 땐 티를 다 내는 나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평소 지인 간이든, 회사 생활에서든 갈등 상황이 생기면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인과를 따져본다. 그래서 그날 밤도 늦게까지 아이와의 일을 곱씹었다. 스스로 해보고, 안 되니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한 일은 다시 생각해 봐도 기특한 일이었다. 표현이 조금 불손했다곤 하지만 만 3살이니 그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오늘의 이 갈등은... 전적으로 엄마의 여유가 부족한 탓이었다.
"이런 엄마도 있고, 저런 엄마도 있는 거지~ 내가 볼 때 너는 그래도 잘하고 있어! 엄마가 반성하잖아. " 그나마 친정 엄마의 위로를 듣고 힘을 낼 수 있었다.
다음 날, 나는 아이에게 사과했다. 어제 일을 생각해 봤는데 네가 잘 한 부분이 있다고. 앞으로도 뭔가 시도해 보다가 안 되면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달라고 했다. 엄마가 어제는 여유가 없어서 잘 못 대처했지만 다음에는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말이다.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장난감 던진 건?"이라고 했다. "장난감 던진 건 ㅇㅇ가 잘못했지. 그래서 그건 어제 다 이야기하고 풀었지? 엄마가 말하는 건, 어제 ㅇㅇ가 잘 한 점도 있는데 엄마가 그걸 무시해서 미안하다는 거야."
구구절절한 엄마의 말을 아이가 이해했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후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안아주세요."
그제야 전날부터 한껏 엉켜있었던 감정이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을 두고 완성된, 모성애의 한 조각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