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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 아이들을 품을 때

다채로운 세상에서 우리는 넓어진다

by 미지의 세계

저녁에만 바람이 선선했던 계절, 우리는 처음으로 집을 벗어났다. 우리 가족의 첫 캠핑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숙소가 이미 지어져 있는 글램핑이었지만 잠자리 형태가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잠을 잔다는 것, 좁은 곳에서 복닥복닥 설레는 마음을 나누고 손에 설익은 도구들로 밥을 해 먹는 게 의미 있었다. 아이들은 바다를 보며 밥을 먹는 게 매우 설레는 듯했다. 캠핑 의자에 앉았다 일어서며 마구 뛰었고 머리카락이 바닷바람에 가볍게 흩날렸다.


아이들은 너무 신이 난 나머지 고기를 조금 흘리기도 했다. 평소 같았으면 조심하라고 이야기할 법도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마음이 가볍게 동동 떠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잘 먹지 못하던 과자와 젤리, 그리고 구운 마시멜로까지 먹어서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채로 첫째가 말했다. "엄마, 이게 캠핑이에요? 캠핑 너무 좋아요!"



물론 아이를 낯선 곳에서 재운다는 건 상상만 해도 복잡한 일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입혀 재울 때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써야 해서다. 하지만 이번 캠핑 때는, 잠을 조금 늦게 잔 것 빼고는 모두 무사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밥도 야무지게 먹고 캠핑장 근처를 찬찬히 산책했다. 씻고 산책을 가자고 하니 아이들 스스로 세수도 하고 옷도 갈아입었다. 그 모습이 대견스러워 혼자 흐뭇하게 웃었다.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나와 남편이 부모로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새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몇 가지 더 발견하고 집에 오는 길, 유독 햇살이 따스했다.



돈을 내고 했어도 훌륭했을 경험인데 이번 캠핑은 처음부터 끝까지 공적인 지원을 받았다. 지역 육아지원센터에서 숙소 비용과 모든 식자재, 간단한 놀이 프로그램까지 전부 지원해 준 것이다. 아무래도 돈을 들이지 않고 가족끼리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보니 경쟁이 꽤 치열했다고 한다. 여러 우선 선발 기준이 있었다는데 운이 좋았다. 평소에 센터에서 하는 여러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했던 게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 이런 행운이 시골살이의 보너스처럼 느껴졌다.


말이 나와 말인데, 사실 센터 직원들은 이제 친한 동네 이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매 주말마다 아이들과 센터에서 운영하는 공공 키즈카페에서 놀고, 장난감 도서관에서 새 장난감을 빌려오며, 센터의 체육, 미술, 음악 수업을 듣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아는 어른이 많으니 좋은 건 읍내나 다른 마을 축제장에서도 다들 아이들을 친근하게 맞이해 준다는 점이다. 낯선 환경에서 느낄 법한 불안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달까. 또 모든 프로그램을 이용할 때 별로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좋다. 부모 말고도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손길이 여럿 있어서 시골에서의 육아도 그리 외롭지는 않다.



물론 꼭 이런 프로그램 아니더라도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의 장점은 많다. 당연하지만 자연과 가깝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갈대밭이나 호수, 각종 꽃 농원 등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들에는 어김없이 널찍한 공원이 있다.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공원들이어선지 놀이터도 굉장히 최신식이다. 자연 친화형 놀이터와 미끄럼틀 시설이 안전한 곳에 함께 들어서있다.


그렇긴 하지만 사실 우리 아이들은 흙길 자체도 좋아한다. 모래 위를 달리며 단련된 다리가 제법 단단하다. 자연을 이용하는 공간은 비가 오거나 날이 더 추워지면 놀기 어렵다는 게 단점일 수 있지만 그건 도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관광지라고 하기엔 다소 심심한 이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은 건강하고 해맑게 자란다.



여기까지 보면 마치 시골살이에 온전히 적응한 듯 보이지만, 사실 아직 우리 가족은 이 지역의 매력을 온전히 모르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하루는 온 가족이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시장을 통과하게 되었다. 시골에도 마트는 있고, 필요한 물건을 대부분 인터넷으로 시키기 때문에 시장을 자세히 둘러본 건 거의 처음이었다.


그런데 잠시 걷다 보니 어디선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났다. "엄마, 맛있는 냄새나!" 아이의 말이 들리기 전에 이미 우리 부부의 발길도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에는 소위 '옛날 통닭'이라고, 닭 하나를 통째로 튀기는 치킨 집이 있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대 여섯 개가 길 하나에 주욱 늘어서있었다.


"뭐야, 이런 데가 있었네?"


우리는 조금 걷다가 옆에 있던 가게에서 결국 치킨을 샀다. 갓 튀겨낸 닭과 만두 튀김, 고구마튀김이 종이 상자에 담겼다. "아이고, 애기들이 참 귀엽네~" 사장님은 무와 양념을 더 넣어주었다. 상자에 전해지는 온기가 참 기분 좋았다. 좀 더 걷다 보니 시장 안에는 배달 어플로는 발견할 수 없었던 가게들이 많았다. "종종 나와서 걸어야 할까 봐. 맛있는 것도 먹고." 다양한 냄새와 사각사각 각종 채소들을 옮기는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시골 시장의 조용한 복작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사마귀와 사슴벌레, 개구리와 짱뚱어, 트랙터와 이앙기.... 시골 풍경의 이모저모를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와 또 다른 세계의 인류를 직접 키우는 기분이 들어서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아이들이니 무작정 넓고 큰 세상을 보여줘야겠다 욕심이 나다가도, 어차피 커 갈수록 현대적인 생활과 도시 풍경에 더 익숙해질 텐데-하며 고개를 젓는다.


탁 트인 하늘에서 별을 보고 언제든 바다를 볼 수 있는 시골은 나조차도 처음 만나는 세계다. 그래서 무엇이 소중한지, 예를 들어 자연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과 소리, 냄새가 왜 특별한지에 대해 아이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채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건 언제나 좋은 일, 시골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품는다. 그 안에서 아이와 내가 조금씩 넓어진다.


캠핑장에서 다같이 본 노을과 시장 통닭을 들고 걷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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