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면 치과로 가야지

by 미지의 세계

초등학교 6학년은 참 묘한 나이다. 어른들이 보기엔 아직도 아이인데 자기들은 어른이 된 듯한 착각이 든다. 다니는 학교에서 가장 윗 학년이니 그런 마음이 드는 건 그럴 수 있겠다. 문제는 이런 인지부조화가 흑역사를 만든다는 점이다. 괜히 거칠어 보이려고 몸집을 부풀리다가 실수를 하게 된다.


과거 교실에서 나와 친구들도 그랬다. 담임 선생님을 담탱이라고 부르거나 성함을 직접 부르곤 했다. 그런 호칭은 선생님 몰래, 뒤에서 하는 것이었지만 오만방자함은 갈수록 커졌다. 나중에는 선생님 바로 앞에서 그를 욕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오늘 양치를 안 하고 온 것 같다'거나, '수업이 너무 지루하지 않냐'는 식이었다. 주어는 없었지만 대화를 나누는 모두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아들었다.


그날도 선생님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하며 '진짜 이상해'라고 했는데, 문득 선생님이 그러셨다.


"이상하면 치과로 가야지."


순간 교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야유 비슷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선생님. 그게 뭐예요! 아우, 재미없어요~"



이가 상하면 치과로 가야 한다는, 요새말로 아재 개그에 모두가 당황하며 웃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그 뒤로 당사자 앞에서 그를 욕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대화를 다 듣고 계셨다는 뜨끔한 자각 때문인지, 아니면 우리를 어떻게든 웃기려는 어른을 욕하는 게 내키지 않았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해가 지나고, 중학생이 되었지만 그의 소식은 계속 들을 수 있었다. 다음 해에 친동생이 다시 그의 반으로 배정받았기 때문이었다.


"누나, 담탱이가 그러더라. '이상하면 치과 가야지'. 진짜 어이없지 않아?"

"야, 그거 나 때도 했던 얘기야.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나 봐."


그때도 우리는 비웃었지만 이상하게 그 뒤로 치과를 보거나 '이상해'란 말만 들으면 그가 떠올랐다. 비웃는 마음은 어느새 사라진 뒤였다.



험담하는 사람에게 농담을 건넬 수 있는 건 어떤 마음이 있어야 가능할까. 상대와 잘 지내고 싶은 마음, 사이를 부드럽게 풀고 싶은 욕구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나 되어야 생길 것 같은 마음이다. 아니면 경제적으로 지독하게 얽혔거나. 옛날에 나는 작가처럼 아침 뉴스 코너 대본을 썼는데, 그때 진행하던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대본이 너~무 길어. 네가 근본이 없어서 그래."


물론 이유는 있었다. 그분이 대본을 잘 보지 않으시기에, 앞뒤 맥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라고 설명을 넣은 결과가 그거였다. 하지만 '근본이 없다'는 말도 사실이었다. 공식 작가도 아니고 관련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원래 적당히 맞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더 나쁜 법이다. '근본이 없다'는 말이 가슴에 콱 와서 박혔다. 주변에는 헤어, 메이크업을 해주는 선생님과 또 다른 진행자, 출연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날 하루 종일 생각했다. '기분이 너무 나쁜데, 뭐라고 말해야 둥글면서도 할 말을 하는 것일까.' 결국 아무 말도 못 한 내 모습도 마음에 걸렸다.​


물론 그렇게 내뱉은 선배도 기분이 좋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다음날 내게 말했다.


"오늘은 좀 낫네. 이렇게 하니까 훨씬 낫잖아."


그래서 나는 어제 내내 거울 보고 연습한 말을 했다. 웃으면서도 지지 않는 문장을 찾기 위해 하루 종일 고민하고 다듬으며 외운 문장이었다


"네. 다음에도 저한테만 살짝 알려주세요. 고치는 건 잘하거든요. 고집할 근본이랄 게 없으니까요."


뼈가 있는 말이었기에 성공한 농담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웃으며 이야기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전부 웃었다. 주변 분위기와 내 마음이 풀렸다는 게 중요했다. 다행히 그 선배랑은 무리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직설적으로 따지거나, 아예 무시하고 지내는 것보다는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럼에도 '뼈 있는 농담'은 오랜 시간을 연습해 나온 결과물일 뿐이다. 여유 속에서 무심코 툭 던진 농담을 이기지는 못한다.



예전에 인상적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어느 노인이 취미로 종이접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나중에 기억을 잃더라도 자신을 돌보는 사람에게 작은 기쁨을 주고 싶어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의 농담도 어쩌면 비슷하다. 관계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와 약간의 위트. 받고 나면 피식 웃게 되지만, 그보다 먼저 말을 건넨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


아무튼, 종종 ‘이상하면 치과에 가야 한다’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초등학교 6학년일 때는 비웃었지만 지금은 안다. 어른인 척하던 우리들 사이에서, 정작 어른은 그분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선생님의 태도를 이제야 배워보려고 하고 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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