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by 미지의 세계

어느 스승의 날이었다. 가방에는 엄마가 선생님께 드리라고 한 작은 봉투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흔하게 주고받던 '소정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성적인 아이였던 내게는 그 가벼운 봉투가 무거운 돌덩이처럼 느껴졌다. 누가 볼세라, 아직 출근하지 않은 선생님의 책상 위에 봉투를 재빨리 놓았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선생님이 자리로 오셨다.


봉투를 집어드는 선생님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그러나 수업이 모두 끝나고 선생님은 나를 조용히 부르셨다.


"이거, 어머니께 전해드리렴. 그리고 감사하다고도 말씀드려 줘."


나중에 집에서 봉투를 열어보고 나서야, 어머니가 전하려 했던 '소정의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상품권 몇 장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안에는 선생님의 단정한 필체가 담긴 편지도 있었다. 내용이 전부 기억나지는 않지만 편지 말미에 있던 한 문장은 또렷이 남아 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상품권의 액수는 꽤 큰 금액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선물을 받지 않았을 뿐 아니라 편지까지 써서 돌려보냈다. 다른 아이와의 형평성, 부담감... 뭐 그런 말들이 적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편지를 받은 어머니가 기분 나빠하지 않은 걸 보면 내용도 꽤나 완곡하게, 정성 들여 쓰셨던 것 같다.


당시에는 '선생님이 선물을 받지 않으셨구나' 그 정도의 감상만 있었는데, 수십 년이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대단한 분이셨단 생각이 든다. 눈에 보이는 이득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신념 사이에서, 보이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일은 훨씬 어렵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도 그 선생님을 참 좋아했지만 기억에 선명히 남아있는 그 한 문장 때문에 지금도 그분을 좋게 기억한다.



선생님이 남긴 문장은 이후 직업윤리를 형성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무언가 대가성 물건을 받는 게 껄끄러운 사람으로 자랐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가이드라인은 종종 시험대에 올랐다. 수십 년 후 보도국에서 근무할 때는 취재처에서 선물이 종종 들어왔다. 그래봐야 단체 이름이 적힌 우산이나 컵, 보조배터리 같은 소소한 종류였다. 그러나 초반에 그런 걸 받아오면 꼭 몇몇 선배들이 짓궂게 말을 걸었다.


"어이고~ 너 선물 받아왔어? 벌써 선물을 받아?"

"뽀찌(수고비) 있나 쇼핑백 잘 봐."


그냥 신입을 놀리는 것이었을 텐데 이상하게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뭔가 크게 잘못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예전에 선생님이 그어 두었던 깨끗한 선을 마음대로 넘어가고 있다는 부채감도 있었다. 그 뒤로는 완곡하게 거절하거나, 마지못해 물건을 받아도 차량 운행하는 분이나 경비 아저씨께 슬그머니 드리곤 했다. 나중에서야 선배들 스스로는 그런 출입처의 호의를 잘도 쓰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지만, 그래도 행동이 바뀌진 않았다.


"어? 선배. 기념품 받으셨네요?"


하루는 용기 내서 친한 선배를 놀리기도 했지만 그는 단 하나의 타격도 없이 순순히 대답했었다.


"응. 주더라. 하나 더 있는데 너도 줄까?"


무심한 대답 앞에서, 나는 도대체 뭘 지키고 있는지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직업 윤리라기엔 거창한, 일종의 자존심 세우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소소한 물건을 받으면서 놀림을 당해야 하냐'는, '나는 그런 물건을 탐낼 사람이 아니다'라는 치기 어린 마음. 이후에도 출입처에서 주시는 물건들은 잘 받지 않았다. 그 빈손이 마치 내 긍지를 지켜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시간이 훨씬 흐른 지금은 선물에 대한 생각이 또 달라졌다. 작은 성의를 잘 주고받는 것도 미덕이라 여기게 된 것이다. 친한 친구에게 무슨 이유로 소소하게 선물을 보냈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이것도 다 갚아야 하는 거 아니냐, 나중에 더 좋은 일이 있을 때 받겠다.'는 것이 당시 이유였다.


이해는 했지만 무척 서운했다. 우리의 관계를 나만 깊게 여기고 있었단 생각이 들었다. 서로 바라는 바가 분명한 사이였다면 그리 서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든 친구든, 계산적이지 않은 관계는 각자 마음의 무게에 따라 서로에게 베푼다. 그래서 선물을 거절당했을 때, 관계를 생각하는 마음의 무게가 다른 건 아닐까 했던 것이다.​ 그 뒤로는 지인들이 건네는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드는 습관이 생겼다. 선물을 건넨 그 마음만큼이나 나도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 위해.



단순히 선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결 하나가 있었다.​ '선물에 담긴 마음'을 우선 생각하는 태도다. 선생님은 물질과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했고, 마음만을 받았다. 거기에 깊은 인상을 받은 제자는 이후에 대가성 있는 선물을 부담스러워하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나 지인이 내민 순수한 애정은 온전히 받아들이며 기꺼이 빚을 지기도 했다. 결국 선물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을 먼저 보게 되는 사람이 되었다.​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단정하게 건네졌던 그 문장은 지금도 내게 남아 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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