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행을 결정한 건 두어 달 전의 일이었다. 결심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까지 2~3일 정도 걸렸다. 20대의 마지막을 해외에서 보내겠다는 오랜 로망이 있었다. 로망, 이라 불리는 종류의 것은 사실 실현되지 않아야 더 의미 있어 보인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런 소망 역시 지우고 또 쓰고, 다시 지웠었다. 다만 삶에 지칠 때마다 다시 꾹꾹 소망을 눌러쓰며 탈출을 꿈꾸는 그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살아남은 것이다. 겹겹이 쌓인 수정테이프 위에 모나미 향 진하게, ‘해외에서 서른 살 맞이하기’. 결국, 값이 오를 대로 오른 비행기 표를 결제했다.
12월 31일 (화)
새벽에는 눈발이 날렸다. 전에 없던 강풍과 추위였다. 어쩌면 대만에 가기에 가장 좋은 날이었다. 대만의 겨울은 덜 습하고, 비도 덜 오는 시기로 알려져 있다. 날도 따뜻할 거였다. 드라마틱하게 환경이 변하면 마음을 새로 다잡게 된다. 그걸 기대한 거였지만, 사실 다음 해에도 나란 인간이 변할 일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그 날은 마치 새로운 내가 될 것처럼 계속 되새기고, 의미 부여하기 좋은 날이었다.
오후 늦게 도착한 대만은 생각보다 추웠다. 비가 오고 있었다. 공항에서 미국 달러를 대만 달러로 환전하고,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찾아다녔다. 움직이느라 몰랐지만 버스를 기다리며 잠깐 앉아있자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혹시 몰라 캐리어에 구겨 넣은 야상을 꺼내 터는데 버스가 들어왔다. 2층 버스였다.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2층에 자리 잡고 창밖을 보니 밀림처럼 나무가 엄청나게 많았다. 그 가운데 사원들이, 다시 도시가 나무인 척 띄엄띄엄 들어서있었다. 도시는 대체로 회색이었지만, 사원은 꽤나 화려하고 커 보였다. '대만은 해풍이 불어서 건물 외곽이 다 허름하대' 하는 일행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사원은 왜 저렇게 화려하고 예쁘지? 생각했지만, 피차 모를 것 같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베이 시로 들어가는 도로는 마치 주말에 서울 가는 길처럼 조금씩 막혔다. 그래도 우리가 탄 버스는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여행의 묘미는 ‘최대한 현지화하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행객이 할 수 있는 현지화는 기껏해야 현지 음식만 골라 먹고 뭐 이 정도겠지만, 이를테면 거기에 더해서 그 나라 생각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 대만 첫 끼니로 샤오롱 빠오와 닭날개 튀김, 그리고 타이완 맥주를 선택했다. 타이완 맥주는 얼떨결에 시킨 것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종업원이 ‘맥주? 차?’하고 물었다. 대만은 음식을 먹기 전 뭔가 음료를 마시는 게 일반적이라는 걸, 주변을 좀 더 둘러보고서야 알았다.
유명 식당에 쿠폰을 가져가면 그냥 먹을 수 있는 샤오롱빠오. 한국에서도 먹을 수 있지만, 뭐랄까 그냥 맛있다.
한 입 들이키는 순간 너무 맛있어서 사진찍은 타이완 맥주
첫 끼는 어찌 저지 대만스럽게 먹었지만, 사실 이후 일정에선 입맛을 현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초밥집이나 라멘집이 접근하기도 쉽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노노 재팬’을 외치며 대만으로 온 여행객 주제에 일본 음식들을 먹고 있자니 스스로 좀 웃겼다. 야시장에서 만난 삼계탕 같은 탕은 먹어볼 만도 했는데 웬 약재들이 뒤섞여 오묘한 냄새를 풍겼다. 취두부 냄새도 맡았던 것 같다. 아무튼 야시장에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저 내 속도대로 걷는 것도 아주 큰 힘이 들었다. 땅콩 아이스크림이나 만두, 두부튀김 등 같은 간단한 음식을 사서, 인파 옆으로 비켜 서 먹었다. 편안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야시장 음식은 왜인지 그렇게 먹어야만 더 맛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땅콩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과정. 어느 야시장에 가도 이런 식으로 가운데 푸드 매대들이 쭉 줄지어 서 있다.
저녁 11시 즈음에는 타이베이 101 빌딩 불꽃놀이를 보러 지하철을 탔다. 어차피 타이베이 101 역 자체는 내릴 수 없었다.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보통은 인근 역에 내려서 불꽃놀이를 본다고 되어있었다. 그 전 역인 중정기념관 역에 내리니 이미 사람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자릴 잡고 있었다.
인파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여의도에서 하는 불꽃놀이에 비해면 이 정도는 매년 감수해도 괜찮을 정도였다. 게다가 화장실도 한 켠에 열 몇 개씩 설치가 돼있었다. 화장실이 눈에 보인다는 건 아주 든든했다. 기억도 희미한 과거 여의도 불꽃축제가 여러모로 고약했던 모양이라고, 과거부터 온 상념에 이유를 붙였다.
12시가 땡 하면 불꽃이 터질 거니까, 그전에 새해 소원을 빌어두기로 했다. 희한하게도 '새해 소망‘ 같은 거창한 기회가 주어지면, 그동안 했던 크고 작은 소원들이 하나도 생각 안 난다. 그저 ’ 우리 가족 건강하게 ‘ 정도만이 생각난다. 지난해도, 지지난해도 빌었던 소원이다. 그러고 보면 살아가는 데 많은 게 필요한 건 아닌 것 같다. 건강하면 됐지, 건강하면 일단 행복할 여지라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올해 소원도 ’우리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주변 다른 사람들처럼 카메라를 들고, 3,2,1 하는 그 결정적인 순간을 찍었다. 영상을 찍으면서, ’카메라를 보느라 이런 결정적인 순간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는 말아야지!‘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카메라 정지 버튼을 누르는 순간, 불꽃이 사라지듯 기억이 사라져 있었다. 대충 화려했던 것 같은데... 아쉬운 대로 지인들과 이 감정을 공유하고자, 카톡 메신저를 켜고 영상을 보냈다. 하지만 이미 카톡은 새해 인사를 하는 사람들로 인해 서버가 터지고 말았는지, 내내 불통이었다. 그러고 보니 대만은 한국보다 한 시간 늦은 새해를 맞이한 거니까, 어차피 이 영상도 뒷북이겠구나 깨달았다. 터덕터덕 늦게까지 운영되는 대만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향했다.
새해가 시작되는 순간, 카운트다운을 세며 찍었던 불꽃놀이.
대만 여행에서 내내 머문 숙소는 첫인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에어비엔비로 잡은 숙소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아파트나 빌라 같은 건물의 맨 위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건물 창마다 창살이 가득해 살벌한 느낌이 들었다. 그 건물만 그런 건 아니고, 주변 모든 건물이 그랬다. 해풍이 많이 불어 그런 걸까 추측을 해봤지만 같은 느낌의 일본과는 너무나 다른 풍경이었다. 스산한 느낌의 골목에서 왜 갑자기 홍콩을 떠올렸는지 모를 일이다. 정확히는 영화 중경삼림 속 도시라고 할까. 중요한 건 홍콩이든 중경삼림이든 실은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거다.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실제 보고 있는 것과 대조하고 있다니. 도대체 하루에 몇 번씩이나 편견을 만들고 재창조하고 있는 건지 새삼 놀랐다.
여차 저차 숙소 거실 깨에서 인기척을 내며 멀뚱히 서 있자 호스트인 케빈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는 옆에 있는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흰 타일이 깔려있고, 1겹으로 된 창문이 두 개나 있는 방이었다. 한국 자취방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외풍이 코 끝에 스쳤다. 바깥보다 더 춥다, 고 생각했지만 불평하기엔 이미 너무 피곤한 상태였다. 어쨌든 앞으로 이틀은 더 머물러야 할 곳이었다. 다행히 욕실에선 따스한 물이 펑펑 나왔다. 뜨거운 물로 깨끗이 씻고 이불을 두세 겹 덮으니 노곤해졌다. 다음 날은 본격적으로 대만 시를 돌아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