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에 산골짜기 펜션 주인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펜션집 아이였다. 시골동네가 그러하듯 아이가 별로 없는 동네에 태어나 과분할 정도로 축하를 받았고 동네사람들과 펜션손님들의 사랑을 받으며 뒷산 소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랐다.
아이가 별로 없는 동네라 친구가 없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다른 펜션집 쌍둥이랑 베프를 먹어 주말아침이면 우리 집으로 쌍둥이들이 와서 하루 종일 놀다가 저녁까지 먹고 잠자기 전에 집으로 가곤 했다. 힘들지 않냐고? 감히 단언컨대, 아이 한 명 보는 것보다 세명 보는 게 낫다. 아이들끼리 노니까 말이다.
쌍둥이나 다른 친구들이 안 올 때면 아이는 손님들이 올 때 쭈욱 스캔을 하고 그날 놀 아이를 정했다. 그날의 친구를 픽하고는 하루 종일 끌고 다니며 놀고 그 아이가 묵는 객실까지 들어가 놀다 오곤 했다.
손님이 적은 날은 아이랑 둘이 900m 정도 되는 오솔길을 걸어 내려가 강가에서 놀기도 했다. 시냇가에 내려가 물에 손도 담그고 페트병을 가져와 버들치며 이름 모를 물고기도 잡곤 했다.
집에 있는 개와 고양이들을 아이는 형제라고 말했다. 고양이들을 빼고는 나이차가 꽤 나는 형, 누나였다. 우리 집에서 어쩌다 살게 된 고양이 아기들은 아이랑 이유식을 같이 먹었다.
아이가 펜션에서 산다고 하면 대부분은 부럽다고 했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니었다. 주말은 언제나 바빠서 아이랑 편안히 놀아주기가 어려웠고 5월에서 9월까지는 평일도 바빴다.
아이가 손님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손님 아이들과 놀았던 것도 어찌 보면 스스로 즐거움을 찾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대신 도시에서 살았다면 못 보고 못 느낄 것들을 자라면서 늘 경험할 수 있었으니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았으리라.
틈만 나면 아빠랑 둘이 나가 아이가 좋아하는 중장비가 가득한 공사장을 찾아가서 넋을 놓고 구경하다 왔다. 시골 장터 구경에 철마다 열리는 지역 축제구경, 계절마다 놀거리가 가득한 자연 놀이터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6살에 처음 어린이집에 가기까지 그 자연에서 원 없이 뛰어놀았다. 가족들이 많이 오는 펜션이라 마음만 먹으면 친구는 얼마든지 있어서 우르르 끌고 다니며 놀곤 했다.
도시에 살았으면 잘 못 느꼈을 계절의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느낄 수 있었고, 넘치는 사랑을 받아 따뜻하고 다정한 아이로 클 수 있었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돼버렸지만,
아이가 더 커서 어린 날을 떠올릴 때면 파릇파릇한 풀빚 기억으로 가득 차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 하나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