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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결 Apr 15. 2021

예쁘지 않아 다행이야

매일 글쓰기

오늘도 어김없이 아이의 등교에 동행했다. 휴직하고 함께 있으면서 아이가 원할 때 원하는 일을 해주자 다짐했지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같이 하자고 할 때는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등교쯤이야 하기 싫은 놀이를 같이 하는 거에 비하면 식은 죽먹기.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만족감이 높은 일이라 볼 수 있다.


아이와 손을 잡고 10분 남짓한 시간을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춥다는 아이를 안아주기도 하고, 하교 후의 계획을 하기도 한다. 정문에서 아이를 들여보내고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커피 한잔 사서 집으로 돌아오는 루틴.


그런데 오늘. 평소처럼 정문으로 들어가는 아이를 바라보며 흐뭇한 엄마미소를 짓고 있는데, 정문 안까지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어떤 아빠와 눈이 마주쳤다. 마스크 때문에 낀 서리인지, 닦지 않아서인지 뿌연 안경을 끼고 아이와 뭔가 의견을 맞지 않았는지 약간 흥분된 얼굴이었다.


그 사람은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입꼬리가 약간 올라가며 기분 나빠지는 느낌의 미소를 띠었는데 순간 몸이 경직되는 느낌이었다. 바로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런데 그 사람도 같은 방향인지 뒤따라 오는 걸음걸이가 그대로 느껴졌다. 묘하게 그 사람 발소리만 크게 들리는 느낌.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삼거리가 나오고서야 그 발소리가 뚝 끊겼다. 그 소리가 끊기고도 몇 분을 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러고 나서 숨을 고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사람은 분명 나를 따라온 건 아닐 것이다. 눈이 마주쳤을 때 느꼈던 느낌도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괜히 죄송하네;;) 하지만 나보다 큰 남자라는 사람이 나를 따라온다는 느낌은 다시 느끼고 싶지 않은 섬뜩함이었다.


외모가 뛰어나게 예쁜 사람들은 정말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사람은 진짜로 남자가 쫒아오는 경험을 많이 했을 테니까. 좋은 의도이든, 나쁜 의도이든.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좋은 의도라도 쫒아오는 건 너무 싫다.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10분이었다. 아, 내가 예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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